2.3. 마싸와 므리바의 물(탈출17,1-7)

2.3. 마싸와 므리바의 물(탈출17,1-7)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주님의 분부대로 신 광야를 떠나 차츰차츰 자리를 옮겨 갔습니다. 그들은 르피딤에 진을 쳤는데,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백성은 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시오.”(탈출17,2) 하면서 모세와 시비하였습니다. 물을 달라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째서 나와 시비하려 하느냐? 어째서 주님을 시험하느냐?”(탈출17.1-2) 라고 말하였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곳에서 목이 말라,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하였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탈출17,3)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갈증을 겪게 되자 모세를 위협하였습니다. 그들은 갈증 앞에서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원래 그랬던 사람들입니다. 아마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도 그렇게 위협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주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탈출17,4)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파라오의 요술사들의 지팡이를 삼킨 지팡이이고, 이집트에 재앙을 내린 지팡이이며, 갈대 바다를 가른 지팡이입니다. 그러나 그 지팡이를 하느님 백성에게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 하느님 백성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돌을 던진다 할지라도 모세는 그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탈출17,5-6).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탈출17,7)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습니다.

 

나눔 18: 고통 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의심이 생겨납니다. “하느님이 계신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의심하기도 합니다. 또 하느님께서 계시면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냐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의심하는 행동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마싸는 시험하다는 뜻이 있고, 므리바는 싸웠다는 뜻이 있습니다. 마싸와 므리바를 기억하면서 이 백성이 어떻게 하느님께 불경을 저질렀는지를 기억해보고, 내 삶의 자리를 마싸와 므리바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조장들의 노래

발걸음이 무겁다.

이집트에서 벽돌을 만들고

짐을 옮기는 것을 감독할 때는

편안한 잠자리와 기름진 음식이 보장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나에게 보장 되는 것이 없다.

저들과 똑같은 데서 잠자야 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고, 똑같이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저들과 똑같은 권한을 가졌고, 내가 말해도 들을 사람은 없다.

이집트의 삶이 그립다

나일강의 풍요로움이 그립다.

 

이 모래바람이 싫다.

갈증은 너무도 힘들다.

모래바람이 불어올수록 모세를 향한 미움은 커져만 가고

갈증이 심해질수록 모세를 향한 원망은 깊어만 간다.

그래서 모세가 더더욱 싫다.

오늘도 동족들의 마음을 선동이나 하여

나의 원망과 미움을 키워보려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모세와 함께 있습니다. 이 백성은 자신들의 입을 절제하며 모세를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모세를 만나는 것이니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와 존경 안에서 모세를 만나야 합니다. 모세와 함께 눈앞에 주어진 역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노력하며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백성은 하느님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들의 입을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눈앞의 것만을 찾아 움직이려 하였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며 끊임없이 모세를 마음 아프게 하였습니다. 광야에서의 생활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는 누구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조그만 것에도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광야는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향하는 백성들이 그저 잠시 지나가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이집트를 탈출한 사람들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 백성을 이끌고 계십니다. 따라서 광야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누구와 함께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광야는 결코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꿔야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꿔야 하느님 백성의 생활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 속에서 약속의 땅을 향하여 모세와 함께 나아가는 이 출애굽의 여정은 얼마나 희망찬 길입니까? 더 이상 내 가족이 이집트인의 노예가 아니고, 강제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며, 평등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감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 면에서 출애굽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여정은 오늘도 어디에서나 계속되고 있고, 광야의 고통은 지금 우리가 머무는 공동체에도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나만 생각하면 공동체의 삶은 힘들어지고, 공동체를 생각하면 공동체는 행복해 집니다. “나 하나의 불평과 불만은 공동체의 불평과 불만이 되고, “나 하나의 배려와 순종은 공동체의 기쁨과 은총이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고, 옆에 있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함께 알아가려 해야 합니다. 내 분풀이를 만만한 사람에게 쏟아붓지 말고, 내 입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를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1)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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