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간음하지 마라
간음은 부부가 아닌 이들이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살이 하던 히브리인들에게는 인권이 없었기에 젊은 히브리 여성들은 지배자들에게 성적 약탈을 흔하게 당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배자들에게 항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계명이 선포될 때, 특히 여성들은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을까요? 이제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렸을 것입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탈출20,14)
하느님 백성에게 가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불륜을 통하여 가정이 파괴된다면 결국 교회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파괴는 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오고, 공동체의 파괴는 하느님 백성의 파멸을 가져오기에 간음은 공동체 안에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유를 찾은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힘과 재력을 이용하여 여성들을 향락의 도구로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불행하게도 권력을 가진 이들이나 재력을 가진 이들이 지금도 자신의 힘과 재물을 이용하여 성을 착취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 백성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삶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결혼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성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간음하는 것이지만, 결혼한 남자가 같은 일을 하면 간음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관계입니다. 어떤 일이 상대방에게 죄가 된다면 나에게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5,28)
죄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단호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마음의 뿌리를 단호하게 뽑아버리고, 죄 지을 기회를 피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5,29-30)
육체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마음으로 음욕을 품었다면 간음한 것이니, 몸과 마음을 조심하지 않고, 바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간음하게 되는 것입니다. 콥트 정교회에는 시몬이라는 성인이 있는데. 그분은 한 쪽 눈을 보지 못하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직업은 구두 수선공이었는데, 어느 날 구두를 수선하러 온 귀부인의 허벅지를 보고 음욕을 품은 시몬은 즉시 통회하며 수선 도구인 꼬챙이로 자신의 한 쪽 눈을 찔렀습니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에게는 예수님 말씀의 실천이 더 중요했던 것이고, 하느님 나라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내를 버리는 것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마태오19,9)
예수님 시대에는 쿰란 종파만이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면서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부다처제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과 재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남자들에게 큰 권한을 부여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으면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일까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바리사이계 율법학자들은 심지어 음식을 태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도 수치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남편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하느님 백성은 배우자를 사랑하며, 배우자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배우자의 부족함을 단죄한다면 그 잣대로 하느님께로부터 단죄 받을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신의(信義)가 있어야 하고,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서로를 믿어주고, 어떤 역경을 만나도 의리를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부부는 서로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가난해도 부족해도 사랑해주며, 아껴주고 믿어주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께도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의 저녁기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남편은 “어떤 이유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이 한마음이 되어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부부는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남편을 사랑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 안에서 고민할 때 부부의 신의는 더 깊어지고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나눔 24: 부부의 신의는 무엇입니까? 그 신의는 어떻게 꽃을 피워야 합니까?
악마는 나를 유혹할 때 하느님을 미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내 행동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그럴듯한 명분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게 유혹을 합니다. 하느님을 벗어난 행위 중에 죄가 안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부의 신의는 하느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하느님 안에서 함께할 때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