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거짓 증언이란 사실 여부를 공적인 자리에서 따질 때, 다양한 이유에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거짓 증언을 통해서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가끔은 진실이 왜곡되고, 정의가 거짓에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의를 부르짖다가 감옥에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게 됩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들은 사라지게 되고, 진실을 이야기했다가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생각하며 입을 닫아버리게 됩니다. 더 나아가 불의를 지적했다가 불의는 법으로 보호를 받고, 그 지적의 방법을 문제 삼아 불의를 지적한 사람이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존중을 받아야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정의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이 계명은 잘 지켜지지가 않습니다. 거짓말한 사람뿐만 아니라 거짓 증거를 만들어 심판한 사람도 심판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6)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는 동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살아왔고,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를 얻는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이고, 진실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이웃과 공동체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하느님 백성은 이웃을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거짓 증언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침묵하거나 거짓을 말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불이익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진실에 입을 닫아서도 안 됩니다. 입을 닫음으로써 진실이 막히고, 무죄한 이가 위험에 처하게 되며, 더 나아가 무죄한 이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나의 죄를 덮고,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거짓 증언으로 그 죄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는 경우는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입니다. 상대방이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함이고,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했지만 인정하지 않고, 아무리 증거가 많이 나온다 할지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니다. 그런 기억이 없다. 모르겠다.”고 발뺌을 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당신이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 보시오.”라고 말하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진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깎아 내리며, 개인이나 조직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고, 심지어 거짓 증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신앙인들은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지켜야 합니다.
둘째, 거짓 증언을 강요받는 경우입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계명은 단순히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하라는 것을 떠나서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사실을 왜곡시키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진실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되며, 고문이나 협박을 통하여 거짓 자백을 만들어도 안 됩니다. 인간의 나약한 육체는 고문이나 협박에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거짓 증언을 강요하며 고문이나 협박을 가할 경우 자신이 하지 않을 것을 했다고 자백하고, 다른 사람까지도 허위로 끌어들입니다. 우리의 역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거짓 자백을 받아내어 증거로 삼고, 그것을 정쟁의 도구로 삼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강요는 아니지만 친분이나 기타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거짓 증언을 하거나 침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오.”라고 한마디만 해 주면 무죄한 이가 억울하게 손해 보는 일이 없을 텐데, 친분 때문에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짓 증언을 하여 죄 없는 이를 억울하게 만듭니다.
셋째, 상대방을 모함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 때, 보통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큰 쾌감을 얻게 됩니다. 성실한 사람,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을 행복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셉은 포티파르의 아내로부터 모함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요셉이 감옥에 갇힐 때 포티파르의 아내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을 이끌어 주시어 이집트의 재상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셉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이 계명을 들으면서 “자신들의 억울했던 처지”를 떠올리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넷째, 미운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지도자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법은 권력자의 편에 섰고, 증거는 조작되었으며, 그를 죽이기 위해 모든 권력을 다 끌어들였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모함을 받으셨습니다. 유다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사형을 요구하며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마태27,25)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없애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나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다섯째, 병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를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각종 기사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극단적인 표현을 쓰고, 그 글에 온갖 사람들이 댓글을 쓰며 현인과 판관을 자처합니다. 미디어의 글들을 살펴보면 긍정적인 글보다는 부정적인 글이 훨씬 많습니다. 병에 걸렸기에 망상에 빠지고, 병에 걸렸기에 관종이 되어 사람들을 자극하고, 그 관심을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사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병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으로도 연결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될 때, 그 부끄러움이 자신을 단죄하기 때문입니다.
침소봉대 (針小棒大)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바늘을 큰 몽둥이라고 말하는 것으로써, 작은 것을 크게 부풀려서 거짓을 말하거나 과장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침소봉대는 칭찬의 형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 백성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의 잘못은 크게 보고, 형제자매들의 잘못은 작게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형제자매들을 모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사실이 아닌 이야기, 가짜 뉴스”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도 명백하게 거짓증언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기에 비방과 비난을 아무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그 말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려 합니다. 처벌이 없거나 약하기에 거리낌 없이 살인행위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진실이 승리하고, 하느님의 정의가 다스리는 세상이 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5,37)
신앙인은 “아니오”와 “예”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을 말하는데 상대방이 안 믿어주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거짓을 말하면서 상대방을 믿게 하려고 하느님을 끌어들여서도 안 됩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좀 더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대방이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형제자매들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나눔 26: 많은 거짓말들이 내 입에서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거짓을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느님 백성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은 그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이지만 악마가 원하는 것은 미움과 단죄와 분열입니다. 유혹에 빠진 이들은 알지도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는 체 하고, 말을 만들어 상대방의 명예를 실추시키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상대방을 모함합니다. 이런 일들은 성당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무리를 지어 서로의 허물을 덮어줍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언제나 하느님 편에 서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존중해 주고, 내가 비록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