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약자 보호법(탈출22,20-26)

2.5. 약자 보호법(탈출22,20-26)

하느님께서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약자 보호법을 제정하십니다. 약자들은 자비의 대상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기를 원하는 이들은 반드시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이웃에게 너그러운 하느님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느님의 위로를 드러내며, 약자들이 나의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방인 보호법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드십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긴 종살이를 했습니다. 사내아이들은 죽임을 당해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들도 이집트에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기에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도 그런 고통을 당했으니 당연히 너희도 당해야 한다.”라는 식의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억압당하고, 학대당하던 때를 기억하면서 내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22,20).

 

그런데 시집살이를 해 본 사람이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오히려 자신이 당한 것 보다 더 심한 학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보상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고, 주어지는 시련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감정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은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것들을 한없이 주시고도 계산하지 않으시고, 더 주시려고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억할 때, 억압과 학대를 사랑과 자비로 돌려줄 수 있게 됩니다.

 

과부와 고아 보호법

고아와 과부는 나약한 자들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고, 만일 힘 있는 이들이 그들을 착취하거나 억압하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저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돌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모세를 부르시어 출애굽을 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비를 베풀 수 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탈출22,21)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이라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해줄 때,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 받게 되는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면 저주받는 자들이 가는 곳에 가서 울며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지 않은 이들을 향하여 그러면 나는 분노를 터뜨려 칼로 너희를 죽이겠다. 그러면 너희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 너희 아들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탈출22,23)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내가 판단한 그 잣대로 내가 판단받을 것이며, 내가 단 그 저울로 내가 심판받을 것입니다. 내가 휘두른 그 칼로 결국 나도 죽고 내 가족들까지 죽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법

가난한 이들이 돈을 꾸는 이유는 생계와 직결된 것입니다. 만일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채권자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쥐고 좌지우지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자신이 하느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백성에게, 너희 곁에 사는 가난한 이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그에게 채권자처럼 행세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된다.”(탈출22,24)

 

하느님 백성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됩니다. 가난한 이들이 돈을 빌리고, 또 이자를 갚느라 또 돈을 빌리게 되면 그들은 결코 절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절망에서 건져 주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당연하게 요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당신 손으로 이끄신 백성이고,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이며, 당신을 사랑하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인 이웃 사랑 실천의 방법을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입니다.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 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탈출22,25)

 

가난한 이가 겉옷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이유는 먹을 양식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가는 이들이 그날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담보로 잡혔던 겉옷을 찾아갈 수 없게 됩니다. 가난한 이에게는 그 겉옷이 이불입니다. 그는 덮을 이불이 없기 때문에 추운 밤을 떨면서 기도하게 될 것이고, 그 고통에 찬 절규를 하느님께서는 밤새 들으셔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결코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애처로운 처지를 내가 만들었다면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나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보이는 이웃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죄인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사랑이 넘치는 배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때, 세상은 행복해지고 밝아집니다. 배려는 다른 배려를 만들어 내고, 그 배려는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지만 그 배려가 사라지고 경쟁과 이기심이 고개를 들어 공동체 안에 자리를 잡게 되면 감사의 열매는 사라지고, 존중과 배려가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내가 받은 사랑과 자비를 언제나 기억하며, 또 다른 자비와 배려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18,23-35)에서 자비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종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형제자매들에게 하고 있는 말과 행위를 모두 보고 계십니다.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말과 행위 때문에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이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는 언제나 형제자매들을 향한 배려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흘러넘치는 배려를 통해서 행복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 배려를 통해서 나 또한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배려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실천의 첫 단추입니다.

나눔 31: 약자들에 대한 보호는 내 주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나는 공동체 안에서 약자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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