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새 증언판(탈출34,1-35)
하느님을 저버린 백성에게 하느님의 계명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에게는 하느님의 계명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했고, 하느님께서는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처음 것과 같은 돌 판 두 개를 깎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즉 용서를 해 주셨다는 것이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다시 이 백성과 계약을 맺으며 돌에 새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처음 것과 같은 돌 판 두 개를 깎아라.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그 처음 돌 판에 새겨져 있던 말을 내가 새 돌 판에 다시 써 주겠다.”(탈출34,1)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십니다. 잘못을 했어도 용서를 청하면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있기에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5)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새 증언판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시면서 혼자 올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나이산 어디에도 사람이 보여서는 안 되고, 양과 소가 이 산을 마주하고 풀을 뜯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은 거룩한 산이고, 하느님께서 모세를 만나는 시간이기에 거룩함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일을 간섭해서도 안 되고, 이렇게 중요한 시간에 소나 양을 먹이며 세상 걱정에 사로잡혀서도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 하느님 백성은 오로지 감사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처음 것과 같은 돌 판 두 개를 깎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돌 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
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다(탈출34,5-9)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시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푸시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어미가 젖먹이 아이를 결코 못 잊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당신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탈출34,6-7)
하느님께서는 잘못한 이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무자비하심을 강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자신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녀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배워 더 큰 악을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그 아들이 그 죄를 배워 더 큰 죄를 짓고, 그 손자가 배워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반드시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자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습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탈출34,9)
모세는 출애굽의 여정 안에서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모세는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다.”고 말씀드리면서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모세는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하면서 하느님께 오롯이 의탁하였습니다. 의탁은 온전한 신뢰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와 용서가 넘치시고,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모세는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한 것입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한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인 나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할 때, 나 또한 모세가 걸은 길을 모세의 마음으로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걷게 될 것입니다.
② 다시 계약을 맺어 주시는 하느님(탈출34,10-28)
모세는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깨졌던 계약을 다시 맺어 주십니다.
“이제 내가 계약을 맺는다. 나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어떤 민족에게서도 일어난 적이 없는 기적들을 너의 온 백성 앞에서 일으키겠다. 너를 둘러싼 온 백성이 주님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할 이 일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잘 지켜라.”(탈출34,10-11).
주님께서는 처음 돌 판에 새겨져 있던 말을 다시 써 주시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은 하느님을 삶의 첫자리에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하나. 너희는 다른 신에게 경배해서는 안 된다.(탈출34,14)
둘, 너희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어서는 안 된다.(탈출34,17)
셋,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탈출34,18).
넷,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탈출34,19)
다섯, 큰 가축이건 작은 가축이건 너희 집짐승 가운데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수컷은 모두 나의 것이다.(탈출34,19)
여섯, 너희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탈출34,21)
일곱, 너희는 밀의 맏물을 거두어들일 때 주간절을, 해가 바뀔 때 추수절을 지켜야 한다.(탈출34,22)
여덟,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곧 이스라엘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탈출34,23)
아홉, 너희는 나를 위한 희생 제물의 피를 누룩 든 빵과 함께 바쳐서는 안 된다.(탈출34,25ㄱ)
열, 파스카 제물을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탈출34,25ㄴ)
열하나, 너희 땅에서 난 맏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주 너희 하느님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탈출34,26ㄱ)
열둘, 너희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서는 안 된다.(탈출34,26ㄴ)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 외에 그 어떤 신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자신들의 맏아들은 하느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며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맏아들은 하느님의 소유이니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이고, 맏아들의 봉헌을 통해서 자녀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선물임을 고백하며 하느님을 섬길 수 있도록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짐승의 맏배도 하느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며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것임에 감사하고, 충실한 관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주일은 주님 안에서 거룩하게 쉬어야 하고, 정해진 날에는 기꺼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하며, 정해진 축제를 정성껏 지내며 하느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어떤 배려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규정입니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짐승들을 대할 때는 최소한의 배려와 양심은 있어야 합니다. 짐승을 배려할 줄 아는 하느님 백성은 당연히 인간도 배려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규정들을 철저하게 지켜 나갈 때, 하느님 백성은 주변 민족의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규정을 지키며 서로 배려하고 살아갈 때, 짐승들까지도 자비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향한 하느님 백성의 삶이고,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조화로운 세상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는 이 말을 조건으로 너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다.”(탈출34,27)
모세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네가 깨뜨려 버린 그 처음 돌 판에 새겨져 있던 말을 내가 새 돌 판에 다시 써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집회의 날에 그 산의 불 속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먼젓번에 쓰셨던 것처럼 그 판 위에 쓰셔서 나에게 주셨다. 그 뒤에 나는 돌아서서 산을 내려와,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만든 궤 안에 판들을 넣었는데, 그것들은 지금도 그 안에 있다.”(신명10,4-5)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써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쓰셨다면 그것 또한 하느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③ 모세가 빛나는 얼굴로 시나이산에서 내려오다(탈출34,29-35)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내려왔을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습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빛이라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빛이시기에 그 빛을 모세가 받은 것입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들으면서 주님의 빛으로 빛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시나이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먼저 아론과 공동체의 모든 수장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야기 할 때는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고,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었습니다. 모세가 하느님 앞에서 물러나와 백성들 앞에 설 때 얼굴을 가린 이유는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얼굴에서 왜 빛이 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너울로 자신의 얼굴을 가려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겸손한 모세는 결코 자신의 빛나는 얼굴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