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모세에게 도전하는 미르얌과 아론(민수11,24-12,16)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불평과 불만, 판단과 심판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 인내와 친절, 사랑과 용서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은 더욱더 자신의 사랑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고, 그 사랑과 열정은 공동체를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종을 신뢰하며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을 시기하지 말고,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하며 하느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다가는 미르얌처럼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① 원로 일흔 명이 주님의 영을 받다(민수11,24-30)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사랑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중심으로 일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원로들에게 주님의 영을 내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시어 모세와 말씀하시고, 모세와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도록 모세에게 있는 영을 조금 덜어 내시어 그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그 영이 그들에게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백성의 원로들이 모세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원로들은 모세를 견제하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세의 일을 협력하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때 진영에 남아 있던 두 사람에게도 영이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진영에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한 소년이 달려와 모세에게 알려주자 옆에 있던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의 주인이신 모세님,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민수11,28)
사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본성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영을 받았으니 이제 모세를 우습게 볼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일흔 명이나 됩니다. 그 많은 인원이 모세에게 덤비면 모세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눈에는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섬김의 리더쉽을 살아가는 모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흔 명의 원로들이 하느님의 영을 체험하였다면 그들은 분명 자신처럼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백성을 위해서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모세와 함께 백성들을 돌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다.”(민수11,29)
물론 모세의 생각은 맞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여호수아의 말이 맞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위해서 이스라엘의 원로들에게 하느님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예언을 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고 있는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고 예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와 의탁이 없으면 아무리 큰 영적인 체험이 있다 할지라도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도 예언을 한 번 해 봤기에 “나도 해 봤는데…,” 하면서 모세에게 반기를 들 것이고, 불평하며 선동하는 이들의 편에 서서 모세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의외로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② 미르얌과 아론이 모세를 시기하다(민수12,1-9)
모세에게는 치포라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치포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성경이 더 이상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장인 이트로가 모세의 아내 치포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시나이산으로 왔다고 언급한 이후에 치포라는 사라졌습니다. 치포라가 수송아지 사건 때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고, 자연적으로 사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잘 모르나 모세는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미르얌과 아론은 모세가 아내로 맞아들인 그 에티오피아 여인 때문에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민수12,2)
모세가 왜 에티오피아 여인과 혼인을 했는지는 성경은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세의 누이와 형이 모세를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영을 내려 주실 때, 미르얌과 아론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르얌과 아론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셨다.”하면서 영도자 모세의 자리를 흔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염려한 것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미르얌과 아론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모세라 할지라도 유다인들의 혼인풍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유다인들끼리 혼인하였고, 친족과 동족 안에서 배우자를 찾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이사악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살붙이를 가까이하여 그의 치부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레위18,6)라고 말씀하시며 근친혼을 금지시키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탈출기 34장에서 가나안 땅의 주민들과 계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며느리로 맞아들이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가나안 땅의 배우자를 통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섬기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과 혼인을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모세와 혼인한 그녀는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 와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실 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굽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셨으니 에티오피아 여인도 하느님 백성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느님 백성은 순수 이스라엘 민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함께 하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 에티오피아 여인을 통해서 우상숭배에 빠질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르얌과 아론은 왜 이 혼인을 반대하며 모세를 비방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태13,57)고 하셨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한 번 받은 하느님의 영에 도취해 있는 누이 미르얌과 형 아론은 모세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르얌과 아론에게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아니라 자신의 동생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르얌과 아론의 생각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라면 이스라엘 백성과 혼인을 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허락을 당연히 받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에티오피아 여인은 이방인 여인이고, 이름도 밝혀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찮은 여인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여인과 모세의 혼인은 모세에게도 어울리지 않으며, 자신들의 품위와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미르얌과 아론은 모세의 선택을 못마땅하게 받아들이며 모세를 깎아 내리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는 교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이 교만한 것이지 모세가 교만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을 한 번 받아 예언을 했던 그들은 어느새 모세와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고, 하느님께 맞서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향한 비난은 모세를 이끄시는 하느님을 비난한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여인과의 혼인은 하느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누이와 형의 비난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비난을 그냥 듣기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습니다.
미르얌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자 주님께서는 즉시 개입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과 미르얌에게 “너희 셋은 만남의 천막으로 나오너라.”(민수12,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께로 나아오자, 주님께서는 구름 기둥 속에 내려오시어 천막 어귀에 서시고, 아론과 미르얌을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르얌과 아론에게 모세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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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모세 |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의 예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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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 |
모세에게 맡겨진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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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입과 입을 마주하여 말하는 사람 |
환시나 수수께끼로, 꿈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한 번 들어본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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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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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일흔 명의 원로는 격이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 하더라도 모세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하지 않을 경우에는 꾸중과 벌이 따라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미르얌과 아론을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민수12,8)
미르얌과 아론은 모세가 자신들의 동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하느님을 대하듯이 대해야 했습니다. 분명 아론은 모세의 입이 되면서부터 모세를 하느님을 대하듯 그렇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영을 한 번 받고서 이렇게 교만하게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을 두 번 받았으면 아마 하느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③ 미르얌이 벌을 받다(민수12,10-16)
주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며 떠나가시자 구름이 천막 위에서 물러갔습니다. 그러자 미르얌이 악성 피부병에 걸려 눈처럼 하얗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의 손에 보여 주셨던 그 피부병이 미르얌을 덮어버린 것입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론이 모세에게 애원하였습니다.
“아, 나의 주인님,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여 저지른 죄의 값을 우리에게 지우지 마십시오. 미르얌을, 살이 반은 뭉그러진 채 모태에서 죽어 나온 아이처럼 저렇게 놓아두지 말아 주십시오.”(민수12,11-12)
아론은 모세를 “나의 주인님”이라고 호칭하며 자신이 모세에게 맡겨졌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모세를 비방한 것에 대한 죄는 어리석음에서 나온 행동이니 용서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모세는 즉시 하느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 주십시오.”(민수12,13)
모세가 주님께 청하자 주님께서는 “미르얌이 하느님의 벌을 받았다면 이레 동안은 그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미르얌을 이레 동안 진영 밖에 격리하였다가 돌아오게 하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미르얌에게 이레 동안 악성 피부병으로 진지 밖에서 보내게 하신 이유는 모세를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원로들도 이제 기회만 되면 “나도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니 모세의 말 뿐만 아니라 나의 말도 들어야 한다.”라고 백성들에게 말하며 모세를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르얌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백성들에게 “모세를 비방하거나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르얌은 모세의 누이였기 때문입니다. 미르얌이 벌을 받자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는 안도했을 것입니다. 이제 당분간 모세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④ 왜 에티오피아 여인인가?
모세는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이 혼인은 하느님의 이끄심입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만 하느님 백성이 아니라 함께 나온 모든 백성이 하느님 백성입니다. 이 백성들을 통해서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선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티오피아 여인이 모세의 아내가 되었을 때, 히브리인이 아닌 다른 모든 민족들은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공정함을 맛보았을 것이고, 모세를 진정한 지도자로 우러러봤을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미르얌과 아론은 공동체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론은 모세의 대변인이었고, 미르얌은 여예언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잘못하면 모세 집안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로얄 페밀리”로 비추어 질 수 있게 됩니다. 다행히 치포라는 이 백성과 상관없는 미디안 족이었기에 영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만일 열두 지파 중 한 지파에서 아내를 얻게 된다면 그 지파가 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평등해야 합니다. 아마도 아무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 에티오피아 여인은 모세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셋째, 에티오피아인들도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과 앞으로 교류가 있을 것임을 미리 보여 주는 복선일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역사상으로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과 교류하였고, 에티오피아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과의 혼인을 통해 흑인 유대인들이 생겨나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또한 에티오피아에 계약의 궤가 모셔져 있다는 전승과 동방박사들이 에티오피아에서 경배를 드리러 왔다는 전승도 그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언급 자체가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하느님의 겸손한 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혼인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인종과 문화, 지역을 떠나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세상 모든 이들입니다. 에티오피아 여인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은 “우리”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눔 40: 가장 가까이에 있는 봉사자를 나는 어떻게 사랑하고 존경해 주고 있습니까? 어떻게 그들을 도와주고 있습니까?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