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나안 정찰과 40년의 광야 생활(민수 13,1-14,45)

2.2. 가나안 정찰과 40년의 광야 생활(민수 13,1-14,45)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뽑아 가나안 땅을 정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주님의 분부에 따라 파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우두머리를 한 명씩을 선발하여 가나안으로 보냈습니다.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라고 그들을 보내면서 그 땅이 어떠한지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그곳에 사는 백성이 어떠한지를 잘 살피고, 그 땅의 과일을 가져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정찰대는 모세의 명령대로 가나안 땅을 사십 일 만에 정찰하고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따서 돌아왔습니다.

 

정찰대의 보고(민수13,25-33)

정찰대는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대해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하며 약속의 땅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민수13,28) 정찰대는 기골이 장대한 아낙의 후손들을 시작으로 강한 민족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땅을 좋으나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 판단하도록 선동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동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유다 지파의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민수13,30) 라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서지 않고 칼렙이 나선 이유는 여호수아가 언제나 모세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고, 여호수아가 나서면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모세 편에 서서 진실을 감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칼렙은 가나안이 너무도 풍요로운 땅이기에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주시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파라오의 군대를 물리쳐 주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그 땅의 모든 민족들을 당연히 물리쳐 주실 것임도 믿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칼렙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하느님께서 이기게 해 주셨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칼렙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다(민수14,1-9)

칼렙과 함께 올라갔던 이들은 가나안 땅의 민족들의 강함을 강조하면서 절망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요, 그곳의 강한 민족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 같아 보인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습니다. 거짓정보에서 두려움과 절망을 움켜잡은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습니다.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주님께서는 어쩌자고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우리는 칼에 맞아 쓰러지고, 우리 아내와 어린것들은 노획물이 되게 하시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민수14,2-3)

 

두려움을 움켜잡은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에 전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원망하며 다시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이렇게 제시하였습니다.

 

우두머리를 하나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민수14,4)

 

이스라엘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자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의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이 백성의 영도자인 모세는 당당하게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며 그들을 진정시켜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터져 나온 노예근성은 예의를 잊게 만들고, 더 나아가 하느님도 잊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은 섬김의 리더쉽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의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오지만 군림하지 않는 권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이 존중하지 않고, 따라주지 않으면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현세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또한 모세와 아론에게 하느님 백성은 섬김의 대상이지 싸움의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은 땅에 엎드리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이기에 하느님께서 분명 개입하시어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란을 여호수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릴 때, 모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본성을 알고 있었기에 우려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우려대로 하느님의 영을 한 번 받은 경험이 있는 원로들은 모세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들 중 한명이 우두머리가 되어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을 제시한 것입니다.

 

드디어 여호수아가 나섰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칼렙이 옷을 찢은 이유는 슬픔과 분노와 애통함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이 눈앞에 있지만 이들은 가나안의 주민들을 두려워하여 그곳으로 가기를 거부하고, 다른 지도자를 뽑아 이집트의 종살이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하느님께 대한 배반이기에 하느님께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는 여호수아와 칼렙에게는 분노로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하느님의 약속을 잊고 두려움을 붙잡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칼렙은 이 백성의 어리석은 선택에 슬픔을 느끼며 진실을 말해 주고자 자신들의 옷을 찢었습니다. 또한 한생을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힘써 온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 앞에 엎드려 있는 상황에 분노와 애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칼렙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온 사실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저 땅은 정말 무척이나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주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저 땅으로 데려가셔서 그곳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민수14,7-8)

 

여호수아와 칼렙은 그러므로 모세를 위협하며 주님을 거역해서는 안 되고, 가나안 땅의 백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이 백성과 함께 계시니 두려워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역의 무리는 여호수아와 칼렙의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돌을 던져 여호수아와 칼렙을 죽이자고 말을 해 댔습니다. 그들 눈에는 여호수아와 칼렙이 모세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미 이집트를 향하여 마음을 돌린 그들은 모세도 돌을 던져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와 모세의 중재(민수14,10-38)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돌을 던져 여호수아와 칼렙을 죽이려고 하자 하느님께서 즉시 개입하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만남의 천막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이들은 모세와 아론에게까지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노하시고 후회하시며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언제까지 나를 업신여길 것인가?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일으킨 그 모든 표징을 보고도, 이자들은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을 것인가?”(민수14,11)

 

그런데 하느님의 실망과 분노는 이 백성을 향한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모세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제 이들을 흑사병으로 치고 쫓아내 버린 다음, 너를 이들보다 더 크고 강한 민족으로 만들겠다.”(민수14,12)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미안하셔서 이렇게 먼저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백성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셨으니 그 책임은 모세에게 있습니다. 모세는 한생을 하느님 백성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드디어 반란까지 일으켰고, 이제는 돌을 들어서 모세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분명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면서 분명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었을 것이고, 하느님께서 이 백성에게 분노하실 때, “맞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책임지고 있는 모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백성을 섬겨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영도자라는 자리를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자유와 구원을 위해서 모세에게 사명을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주님은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충만하며 죄악과 악행을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용서를 청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여기에 올 때까지 이 백성을 용서하셨듯이, 이제 당신의 그 크신 자애에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민수14,19)

아마 주님께서 모세로부터 듣고 싶으셨던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간청을 들으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말대로 내가 용서해 주마.”(민수14,20)

 

죄는 용서 받지만 벌은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보고도 믿지 않은 이들은 파라오가 열 가지의 재앙을 겪은 다음에 하느님께 항복하였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그런 운명을 끌어당겼습니다.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잊어버린 백성은 파라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는 축복이 내려집니다.

 

나의 종 칼렙은 다른 영을 지녀 나를 온전히 따랐으므로, 나는 그가 다녀온 땅으로 그를 데려가고, 그의 후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민수14,24)

 

칼렙이 다른 영을 지녀 하느님을 온전히 따랐다는 것은 두려움과 불신을 가진 사람들과는 달리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도 언제나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었고,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 백성을 이끌 책임을 맡겨 주실 것이기에 지금은 칼렙만 언급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원된 하느님 백성은 변화된 삶을 통하여 사랑을 실천하고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느님의 종에게 위협을 가한 백성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서 나온 말로 벌을 내리십니다.

첫째, “너희는 내일 발길을 돌려 갈대 바다 쪽 광야로 떠나라.”(민수14,25) 이제 그들이 가야 할 길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광야입니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이끄시고자 했던 약속의 땅을 땅을 좋으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기에 그들 말대로 약속의 땅이 아니라 광야로 떠나야 합니다.

둘째, “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 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민수14,29-30) 이제 하느님께 불평했던 이들은 그들의 말대로 될 것입니다.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하며 하느님께 불평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노획물이 되리라고 너희가 말한 너희의 어린것들만 내가 데려가서, 너희가 업신여긴 저 땅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 하겠다.”(민수14,31)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자리에서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약속의 땅은 하느님처럼 말하는 이들의 땅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의 기간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자식들은, 너희가 모두 주검으로 이 광야에 누울 때까지, 너희가 배신한 값을 지고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칠 것이다.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 그 날수대로,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민수14,33-34)

 

이스라엘 백성은 축복을 불행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그 땅을 정찰하러 갔던 사람들 가운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칼렙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이들은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 백성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따로 모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 또한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너의 시중을 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해 줄 사람이니, 너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라.”(신명1,37-38)

 

하느님께서는 분명 모세에게 사랑스럽게 말씀하셨겠지만 듣고 있는 모세에게는 눈물 나는 말씀입니다. 한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아왔고, 한생을 하느님 백성을 위해서 살아온 모세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죽어갈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운명을 지닌 상황에서 공동체를 이끌어 가도록 하셨습니다. 만일 지도자가 백성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라면 백성들은 결코 지도자를 따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지도자인 모세까지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끝까지 모세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같은 생활을 하며, 같은 운명을 짊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함을 통해서 당신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통해서 공동체의 지도자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궁핍한 생활을 요구한다면 그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같은 조건에서 생활해야 하며, 같은 법 아래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고, 그것이 바로 섬김의 리더쉽을 살아가는 지도자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제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광야에서 죽을 운명을 지닌 백성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섬김의 리더쉽은 내가 이 일을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는 하느님의 작은 도구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운함이 밀려와 눈물이 눈앞을 가린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백성이 만용을 부리다(민수14,39-45)

모세는 하느님의 심판을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슬퍼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희망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음날 다시 엉뚱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 우리가 잘못하였으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곳으로 올라가자.” 하면서, 산악 지방의 고지대로 올라갔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잘못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아말렉족과 싸워 이겼던 것을 기억하면서 그들과 싸우려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들을 말렸습니다. 그 싸움은 하느님께서 계셨기에 이긴 것이지 자신들의 힘으로 이긴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용서를 청하며 참회할 때이지 만용을 부릴 때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회개의 삶입니다.

너희는 어쩌자고 주님의 분부를 거스르느냐? 이 일은 성공하지 못한다. 주님께서 너희 가운데에 계시지 않으니, 너희가 적에게 패배하지 않으려거든 올라가지 마라.”(민수14,41-42)

 

하느님 백성은 주님의 뒤를 따라야지, 주님께 따라오라고 말씀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계약 궤와 모세가 진영을 떠나지 않았는데도, 만용을 부려 산악 지방의 고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여기서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싸우는 것이 더 생존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세가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그 산악 지방에 사는 아말렉족과 가나안족이 내려와, 만용을 부리던 이스라엘 백성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쫓아 버렸습니다.

 

백성들의 만용은 섬김의 리더쉽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이들이 모세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다면 모세의 말에 순명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면 하느님의 영을 한 번 받았던 일흔 명의 원로들이 결코 교만한 생각과 무례한 행동을 모세에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 백성을 말릴 수 있는 위엄은 가지고 있지만 법적인 권한은 행사할 수 없습니다.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여 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공동체와 사회공동체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추구하는 이념도 서로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하여 십계명을 주시고, 규정과 규칙들을 주셨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아가 하느님까지 부정하게 될 때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익히게 하고,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섬김의 리더쉽도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유의지를 통제할 물리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눔 41: 복을 걷어찬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 안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봅시다. 내가 복을 걷어찬 것은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두려움과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붙잡지 못한 복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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