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과
그분과의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여기서 자신의 총체적 빈곤과 그를
초월성에서 갈라 놓는 심연, 그리고 절대로
하느님을 획득해 소유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기다림에는 침묵만이 존재합니다.
침묵은 기도의 새로운 차원으로서
기도의 다른 차원들을 초월하며
하느님을 기쁘게 영접할 수 있기 위해
더 이상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고통스럽고
메마르고 십자가에 못박힌 침묵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에 대해
하실 참된 계시는 사막의 메마름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이 같은 절대적
빈곤과 무능력의 틀 안에서 일어납니다.
사실,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말은 탄식으로 변할 것이고,
앞서 그토록 활기차고 깊이 있던 묵상 자체는
절대적 무능상태로 침묵하고 말 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느님의 참된 계시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때입니다.
인간은 절대적 빈곤과 메마름의 격렬한 고통을
체험한 후에야 습기 가득한 밤에 피어나는
꽃처럼 하느님 앞에 자신을 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때 비로소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열어 보이고 일러 주십니다.
그러나 그 계시는 인간의 개념과
인간적 표상이 아니라 개념없는 개념,
표상 없는 표상, 모든 상징을
뛰어넘는 상징들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차원자체에서 이루어지는
계시이고 초자연적 계시라고 불립니다.
사실 관상은 '하느님의 신속하고 눈에
띄지 않는 초자연적 계시'라고 정의됩니다.
주부적(注賦的)관상은 영혼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빛을 받아 최고로
성숙한 때에 시작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하느님과 우리의 결합을 충만케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