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를 짓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모욕하고, 내 물건을 빼앗은 형제 앞에서
"내가 옳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가 변명을 하려고 애쓸 때
눈을 감아 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내게 잘못을 저지르고,
내 물건을 빼앗고,
나를 때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냉정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냉정하게 생각하면서도,
즉 네가 잘못했고 내가 옳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면서도,
정당성을 주장하지도 정의를 내세우지도 않으며
오히려 힘든 사랑의 길로 매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결코
궁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 또한 내 정당성에 반해
자신의 정당성을 최대한 내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이 기억납니다.
즉 정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이 일어났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학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수호해야 할
자신의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결국 우리는 그분의 생각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의를 사랑으로 극복하시고
진리를 당신의 희생으로써 쟁취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차마 용서해
줄 수 없는 부도덕한 형제들에 대해 바로
그 방법, 그 척도를 사용해야할 차례입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비겁한 행동이나
절도나 퇴폐적 생활을 용서해야 할
또 다른 베드로, 또 다른 강도,
또 다른 막달레나를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간음한 여인 앞에서
예수님께 제시했던 대로 돌을 던지는 대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해야 할 차례입니다.
"'너의 죄를 묻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느냐?'....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요한 8,10-11)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과 삶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율법적이고' '틀에 박혀 있고' '죽어 있는'
그런 교회로 다시 돌아갈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이 세상의
모든 성전과 지성소의 바리사이들처럼 계속해서
미움에 사로 잡혀 있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내가 만난 그 분
이 헬레나: 이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역시 요즈음 종교문제로 시누이들과 많은 갈등을 겪고있지요
하지만 참고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대항을 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기에.........
침묵속에 모든 것을 참으며 하느님을 믿고있으니 속도 상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저의 아품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감사해요 좋은하루 되세요 [09/23-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