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신부”

한 공동체에서 형제님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식사하실 때 성호 긋고 드세요?”
“저희는 본당에서는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신앙인이라고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윗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는 성호 긋고 밥 먹을 때가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함께 식사하는데 제가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분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데 제가 함으로써 공동체의 친교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에게는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신부님께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형제님! 본당에서는 봉사하는 것 있으세요?”
“예! 저는 본당에서 사목위원을 하고 있습니다.”
“……”
“형제님께서는 그럼 순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굉장히 어리석은 분들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배교를 강요받을 때 ‘그래! 이런 경우에는 잠깐 배교하는 척 했다가 집에 가서 열심히 믿어야지. 저 배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풀려났어야 하는 것인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과연 그분들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직장 생활 안 해보셔서 잘 모르실 텐데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신부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형제님께서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술집에 가서는 술집 아가씨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 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매님을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물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의 일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도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자매님이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것도 일이라고 하면서 형제님에게 말씀하신다면 형제님은 수고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안되죠”
“왜 형제님은 가능하고 자매님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자매님이 불가능하면 형제님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행동에 있어서 그것을 죄라고 인정하는 것과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잘못했습니다’는 통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요’는 통하지 않습니다. 나의 신앙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행동 없는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올바른 것인지, 올바르지 않은 것인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적어도 합리화시키는 기술보다는 용서를 청하는 기술이 앞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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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신부”

  1. user#0 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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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신부" – 요한 ┼
    한 공동체에서 형제님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식사하실 때 성호 긋고 드세요?"
    "저희는 본당에서는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신앙인이라고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윗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는 성호 긋고 밥 먹을 때가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함께 식사하는데 제가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분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데 제가 함으로써 공동체의 친교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에게는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신부님께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형제님! 본당에서는 봉사하는 것 있으세요?"
    "예! 저는 본당에서 사목위원을 하고 있습니다."
    "……"
    "형제님께서는 그럼 순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굉장히 어리석은 분들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배교를 강요받을 때 ‘그래! 이런 경우에는 잠깐 배교하는 척 했다가 집에 가서 열심히 믿어야지. 저 배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풀려났어야 하는 것인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과연 그분들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직장 생활 안 해보셔서 잘 모르실 텐데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신부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형제님께서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술집에 가서는 술집 아가씨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 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매님을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물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의 일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도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자매님이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것도 일이라고 하면서 형제님에게 말씀하신다면 형제님은 수고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안되죠"
    "왜 형제님은 가능하고 자매님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자매님이 불가능하면 형제님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행동에 있어서 그것을 죄라고 인정하는 것과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잘못했습니다’는 통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요’는 통하지 않습니다. 나의 신앙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행동 없는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올바른 것인지, 올바르지 않은 것인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적어도 합리화시키는 기술보다는 용서를 청하는 기술이 앞서야 합니다."

     

    신부님!

    힘 내세요.

    아마 형제님들은 직장 안에서 신앙인의 자세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가지로 이유가 있겠지만, 신앙인으로서 두 가지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어려운 점이 많이 있을 거예요.

    신앙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비신앙인들이 그들의 행동을 보고

    신앙을 갖고 싶어할텐데.

    세상일은 뜻대로 다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보면 안타까워요.

    직장 생활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살기가 쉽지는 않네요.

    그래도 신앙인이니까 하느님의 뜻 안에서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저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신부님!

    힘 내시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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