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 달려가는 여정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
달려 오시는 여정과 같습니다.
만남은 대체로 중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동기는 단순힙니다.
하느님께서는 지나친
일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자녀로서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뜬구름 잡는 일이나
추상적인 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위격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나는 인격체이고
하느님은 위격체이십니다.
나는 성삼위에 사고의 근거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위격설을 통해 신앙을 허무하고
속절없는 그 무엇으로 속단해 버릴
끊임없는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내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나는
하느님 안에서 위격을 체험했습니다.
성부께서는 예수님과 위격으로 다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일하시며
나도 일합니다."라는 그 말씀은
내게 한 가지 아주 분명한 사실, 곧 내게
엄청난 빛의 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이 "네 고향을 떠나 가거라."
(창세 12,1 참조)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하느님의 현존을 어떤 위격체에 돌리지 않았습니까?
모세는 불이 타오르는 떡갈나무 숲에서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출애 3,5)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하느님의
현존을 어떤 위격체에 돌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부와 관계를 맺으시듯이
우리도 성부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부와 이야기하시듯이
그렇게 성부와 이야기해야 합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In God alone my soul 내 영혼이 오직 주 안에 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