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초기에는 피조물의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을 직관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성의 도움으로
일깨워져 어떤 논리를 발견하고
주위에 있는 모든 신적 실재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이성을 제쳐놓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성이 그 자체의
한계성과 그 한계성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오만한
욕망으로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면 사랑이,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뒤를 잇습니다.
바로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사색에
빠질 수 없게 되고 사랑의 품 속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관상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진실된 계시로서,
마리탱이 말하듯이 그분에 대한
위격적이고도 감미로우며 어둡고
소극적이며 종종 고통스럽기도 한 계시입니다.
사랑한다면, 진실로 사랑한다면
모든것이 좀더 쉬워지고
발견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내가 발견한 것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어둔 속에
던져 버렸기 때문에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이 그분에게는 빛입니다.
그분은 그분이 원하실 때
나를 만지실 수 있습니다.
거기서는 사랑으로 벌거숭이가 된
나 자신과 그분 사이를 가로막는
장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놀라운 것입니다.
내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즉 그분께 더, 아니
모든 것을 바쳐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그분께 바쳐 드릴 수 있는
좀 더 값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믿음입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나는 당신께 함께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당신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마련하십니다.
이것이 순수한 믿음입니다.
적나라하게 벗은 믿음입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Credo in unum Deum -Hyden 미사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