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과:참으로 소중한 나를 알기
1. 성가 배우기: 가톨릭 성가: 29 주 예수 따르기로
2. 시작기도: 루카 18,9-14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3. 의로운 사람
의로운 사람은 누구이고, 죄인은 누구입니까? 나 스스로 나를 의롭다고 말한다면 그 자체로 의로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죄인이라면 비록 내가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나는 적어도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니 용서를 청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를 포장하거나 과장하거나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바리사이의 모습과 세리의 모습을 통해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분씩 와 닿는 부분을 이야기 해 볼까요?
3.1.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스스로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빠지면 참으로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종종 봉사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합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그래!”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삶을 보면 그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엉성하고, 기도의 맛을 모르며, 책임감도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고 겸손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당하지만 표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모르고 더 기고만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은 죽을 때 까지 모를 수 있습니다.
3.2. 바리사이와 세리의 자신의 모습 보기
① 바리사이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였고 또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로서 예수님 시대에 그 수효가 육천 명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18,11)
이 사람은 스스로 올바른 사람임을 자처합니다. “꼿꼿이 서서”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교만에 차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돌아다보면서 자신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에는 교만과 멸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시위하는 것이고, 하느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는 이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선행들을 나팔 불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두 번 단식, 율법에 따라 가축과 땅의 수확에서 거둔 이익의 십 분지 일을 바치면 되었으나 그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랑하는 것은 외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내적 의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존중할 때 나는 상대방도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나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되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② 세리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인데 세리들은 으레 부정축재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고, 당시 로마의 식민지 상황에서 유다인들의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니 매국노와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또 무역을 담당하며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들은 외국인들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18,13)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있던 세리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고백을 합니다. 성전에서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가슴을 치면서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속에 얼마나 값진 겸손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필요한 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 탄식 외에 또 어떤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나를 알면 알수록,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자신의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한 것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다보면 나 스스로가 망가지고, 그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들킬까봐 더 “뭐한 척”하게 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4. 참으로 소중한 나 자신
한 형제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비자 교육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성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교리반 선생님께서는 그 형제를 찾아갔습니다. “형제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러자 그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주님께 자비를 청해야 합니까? 제가 뭐가 아쉬워서 저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청합니까? 예쁜 아내도 있고, 토끼 같은 애들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합니다. 또 남한테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주님께 자비를 청해야 합니까?”
그 형제가 정말 자신을 잘 알고 있다면,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면 더더욱 주님께 자비를 청했을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들리지 않는 것도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가 바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4.2.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① 기도하지 않음
기도는 내가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그분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물 속에서 잠수를 하다가도 숨이 차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만이 다시 물 아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생활이 물 속이라면 나는 숨을 쉬기 위해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렇게 숨을 쉬지 않으면 나는 결국 죽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숨을 쉬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하루를 계획할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하루를 지내고, 한 주간을 보내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음도 축복입니다.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리사이의 모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 모습이 어떤지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시지만 내가 듣지를 않으면 나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려 하시지만 마음을 닫으면 바리사이처럼 기도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뽐내게 됩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거울에 비추어서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는 것처럼, 기도생활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들어 줍니다. 또 기도할 때 상대방을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나의 판단만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여유가 생깁니다. 내가 나를 보면 볼수록 상대방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즉 기도하면 할수록 타인도 인정해 주고, 나 자신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때, 여유 있는 모습으로 나 자신을 볼 있고, 가족들의 마음도 볼 수 있습니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바로 앞의 모습만을 바라보기에 조급해하고, 분열이 생기고, 대화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② 교만
사람의 모습 가운데에서 가장 멋진 모습은 겸손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 겸손이 없다면 교만해지고, 어리석음으로 빠져 버립니다. 내가 나를 모르면 겸손해 질 수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면 나를 사랑할 수도 없고, 멋진 모습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교만할 때는 어떤 사람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때 정말 친한 친구가 있다면 가슴에서 나오는 사랑어린 말로 나의 잘못을 지적해 줄 것입니다. 비록 즉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아! 내가 잘못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겸손하지 못한 사람 곁에는 그런 친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③ 필요 없는 자존심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밀고 나가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필요 없는 자존심이라고 합니다. 그 필요 없는 자존심은 결국 나를 망치고, 허황된 삶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필요 없는 자존심은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잘 못 생각했습니다.” “미안합니다.” “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④ 과거에 대한 집착
“전에는 내가 뭐였는데~”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과거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멋지게 성장했느냐가 중요합니다.
⑤ 경쟁심
끊임없는 경쟁심은 나를 성숙시키지만, 필요 없는 경쟁심은 늘 나를 비교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또한 교만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끊임없는 경쟁보다는 끊임없는 존경이 나를 더 성숙시킵니다.
⑥ 성찰 없는 삶
살아가다보면 가끔 황당한 사람을 만납니다. 앞에서는 그럴듯하게 말을 하는데 뒤에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형편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눈앞에서 그 상황만 모면하면 되는, 그래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런 사람 욕을 하다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나이 드신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젊었을 때는 선배 신부님들의 허물을 보면서 비난하고 비판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렇게 비난과 비판 속에서 돌아보니 내가 그 모습으로 살고 있더군. 자네도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남을 존중해 주고, 본받으려고 노력하게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네.”
⑦ 옹고집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결국 자기 멋대로 하게 됩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말은 안 해도 마음에는 불만이 쌓여 있습니다. “나는 내 고집을 피우지 않고 논리적이고, 정당하게 내 주장을 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이 바로 고집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틀린 적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⑧ 미움과 욕심, 그리고 질투
성경에서 보면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하였지만 능력 있는 다윗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한 나머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윗은 사울을 늘 살려 주었습니다. 결국 그 미움과 욕심을 거두지 못한 사울 왕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려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그가 걱정한 대로 다윗에게 왕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미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나를 병들게 만들고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욕심과 질투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 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⑨ 지나친 겸손과 열등의식
나를 망치는 것 중의 하나가 지나친 겸손과 열등의식입니다. 너무도 겸손하기에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듭니다. 또 열등의식은 자신을 움츠리게 만들고 할 수 있는 것들도 못하게 만듭니다.
4.3. 나 자신을 사랑하기
①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나를 사랑하기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돈으로 헤아릴 수는 없지만 성경에서 보면(마르코5,12) 최소 8억 이상의 가치는 있는 존재입니다. 또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습니까? 나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서 더욱 의로운 삶을 살아가고, 더욱 멋진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타인들을 도울 수 있는 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 옷이나 꺼내 입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자리에는 꼭 옷을 단정히 하고 나옵니다. 성당에 오실 때도 집에서 가장 예쁜 옷을 꺼내 입고 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② 타인의 소중함 알기
내가 소중하다면 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누군가의 존경받는 부모이며, 그 누군가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나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감사하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은총뿐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자체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이 있습니까? 부모님께 감사하고, 배우자나 자녀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④ 받아들이기
“나는 원래 안 그랬는데 누구와 함께 있다보니, 이런 일을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라는 것은 큰 핑계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발전이 있고, 성숙이 있고, 또 노력하게 됩니다. “누구 때문에 화를 내다보니 화만 내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 한다면 어떻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웃고 말 것입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의 성장은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결국 받아들이는 삶, 인정하는 삶이 나를 사랑하는 삶임을 알아야 합니다.
⑤ 당당해지기
주변 사람들 중에는 아무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사람이 있고, 대단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겸손하신 분이 있습니다. 또 너무 겸손하셔서 민망할 정도인 형제자매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겸손하신 분들은 자신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늘 초라하게 생각하고 뒤로 물러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것은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5. 실천사항
① 자기 자신의 이름의 의미와 자신이 태어날 때의 태몽 이야기 하기
②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③ 가족들에게 “나”의 장점에 대해서 질문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