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張 면 (요한)
우석 선생의 연미사를 드리면서, 유가족과 여러분께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블라우디 떼 마니부스…….. 손뼉들을 쳐다오.
연극은 끝났다. 임종의 베토벤이 남기고 갔다는 이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인생이 연극인지 연극이 한 인생인지 사십여 년을 오로지 이 나라 연극에 바치신 선생이 후회 없이 몸 하나를 여기 두고 가심을 뵈올 때 부질없는 눈물로써만 보내 드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평생 가시지 않던 그 웃음이 그 죽음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만 것입니다. 홀로 예수님만이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스스로 혼자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믿는 사람도 다시 살리라 하셨고 그러기에 당신은 부활하신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 있을 곳을 마련하려 가노니,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돌아와서 너희를 내 있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하셨습니다.
요한 선생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회자정리 생자필멸….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나면 반드시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헤어지면 다시 만나고, 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죽어서도 다시 산다는 것이 가톨릭 신앙의 현실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는 눈물도 이별도 없을 저 나라에서, 요한선생과의 재회를 빌면서 삼가 이 미사를 그의 영혼을 위하여 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故(고) 정지자(루시아)
돌아가신 루시아 정지자 여사님을 보내 드리는 이 자리에서 몇 마디 고별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한 송이의 꽃이 모진 바람에 꺾어질 때,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안타깝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뜻 아니한 죽음을 당할 때 우리는 인생의 무상함을 절로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루시아 여사와 같이 착하고 어질수록 그런 분이 모진 병으로 쓰러질 때 우리는 슬픔을 넘어 인생 자체에 대한 회의마저 가지게 됩니다.
<인간은 한번 죽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기는 합니다마는, 팔 남매를 낳아 고스란히 가르쳐 내고 맏아들을 하느님께 바친 그 희생이 이렇게 끝나 버리고 만다면 젊어서 하느님을 안 뒤부터 남달리 섬기고 그 믿음 하나로 살아온 그 보람이 이렇게 끝나 버리고 만다면, 현모양처는 물론, 외로운 이, 아쉬운 이들까지를 남몰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살펴 주던 그 갚음이 정말 이렇게 끝나 버리고 만다면, 인생은 너무나 무의미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은 너무나 무심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할 때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입니다. 난 것은 반드시 멸하고 만난 이는 반드시 이별하게 된다고들 하지마는 죽음은 필멸(必滅)이 아닌 부활로 승화되고 이별은 영원한 재회로 전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질고 착한 분일수록 그리움의 대상으로 우리 마음에 남을 뿐, 아주 가서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 영영 사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돌아갈 자리를 생명의 하느님으로 삼고 돌아가신 여사야말로 이름 그대로 지혜로는 여자시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로다. 말씀하시고 과연 부활하는 그리스도를 누구보다도 굳세게 믿으셨기에, 이미 두 달 전 미국에서 최후를 예감하시자 조용한 미소로 십자가를 받아들이시어, 보는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느끼는 어머니가 만리 타국에 있는 5남매를 대하면서 얼마나 태연했는지는 그 어린 따님의 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성금요일은 그가 저에게 띄운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오늘 예수님 돌아가신 날에 어머님 생각 많이 했습니다.
죽음의 슬픔 뒤엔 부활의 기쁨을 언약하신 것 생각하며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생각한 듯이 어머님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저 역시 생각해 왔지만 어머니께서 원치 않으시고 큰오빠 역시 만류하시기에 답답한 마음을 어머님 위한 작은 희생으로 바치며 이곳에서 제 할 일에 무한히 어머님을 위한 기구를 하며 지내고 있기로 작정했습니다“.
냉정히 생각하면 옆에서 마음 아프며 지켜본다고 무엇이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신부님, 생각해 보면 어머님의 일생은 가시덤불 속의 어려움 속을 헤매신 고통스런 생이셨지만, 영혼만은 누구보다도 행복하시다고 생각되어 위안이 됩니다.
더 고생시키지 않고 거두어 가시는 천주님께 오히려 감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이 제게 마지막으로 하신 이 세상에서의 하직 인사는 “천주님 열심히 믿으라”는 간단하고 단순한 한 마디였습니다.
병실의 입원실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고 하시더니, 다시 잠결에서 어렴풋한 말씀은 “천당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테니 착히 살으라”이셨습니다.
제 일생을 통해 마음 깊이 새겨 지니고 살아야 할 잊지 못할 어머니의 사랑의 표시였습니다. 한 방울의 값없는 눈물보다 진정한 한 마디의 기구로 어머니 위해 빌겠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딸….. 어머니는 이렇게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하느님이 주시는 대로 받고, 있는 대로 바치고, 시키는 대로하고, 그 뜻대로 겸손한 사랑을 살다가, 마침내 부르시는 대로 기꺼이 가셨습니다.
때마침 부활절, 우리 어찌 희망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만 하겠습니까?
은총의 비 촉촉히 내리는 봄나절, 부활의 씨앗을 심으러 청산 가시는 정 루시아님을 조용한 기도로 보내 드립시다.
주여, 루시아와 모든 연령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날씨 고르지 못하고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이토록 오셔서 위로해 주신 여러 어른님께, 유족을 대신하여 깊이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