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신부님의 수도자 추모강론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추도미사 강론- 함세웅 신부






오늘 우리는 생전에 우리와 가까웠던 분들의 주검을 눈앞에 두고 주님의 제단 앞에서 기도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의 예전 기도문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확실히 인간의 죽음이란 우리에게 커다란 슬픔과 억누를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것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힘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고 있기에 희망과 소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죽음이란,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란 나에게 무언가 심층내부를 찌르고 때리는 일격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나의 눈을 뜨게 하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막혔던 나의 귀와 입을 열어,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며, 주님께 찬미를 드리게 해줍니다. 그리고 주님을 깨닫게 하고, 주님께 나를 이끌어 줍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든지 간에, 죽음 앞에 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한계성을 깨닫게 됩니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는 ‘시대의 징표’를 알아내는 교회가 되도록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나, 신앙인 개개인에 있어서는 ‘사건의 징조’, 즉 그 의미를 깨닫고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는 뜻으로 재해석되는 것입니다.


그가 진실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면, 그리고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다면, 그가 진실로 공중에 나는 새가 하느님의 뜻과 섭리 없이, 절대로 떨어질리 없다고 가르친 복음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바로 이 시간, 그는 진정 이 두 수도자의 ‘죽음의 사건’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구체적인 인간 역사 개입의 섭리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결코 우연한 사건, 돌발사건의 연합이 아닙니다.


더구나 구원의 역사에는 우연과 돌발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의 사건 속에 하느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고 섭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운명한 김 데레사 자매나, 78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한 우 도미니까 수녀님에게서 하나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두 분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과 영광이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두 수도자가 이 자리에서 서로 만난 것도 사실은 우리가 33세의 젊음 속에서는, 78세의 장수를 볼 수 있도록, 그리고 78세의 장수 속에서는 33세의 젊음을 볼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보충해 주는 사랑의 관계라고 생각이 됩니다.


결국 그것은 ‘나의 문제’, ‘나의 사건’으로 귀결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십 년 후의 나는? 20년 30년 후의 나는? 결국 어떻게 될까? 따라서 몇 년을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중요성, 즉 삶의 진실성과 성실성의 가치를 새롭고 뚜렷하게 나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교육하시는 방법이며 과정입니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죽음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얼마 전에 서거하신 교황 바오로 6세의 죽음이 모든 이를 슬프게 하였고, 전세계 뉴스의 촛점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장엄하게 표현되는 성사적 측면에서의 교회의 일면을 부각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죽음이, 전체의 사건, 교회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중요한 사실을 하나 망각하고 있습니다.


즉 거룩한 교회와 위대한 교황이 있기 위하여, 수백, 수만의 진실한 삶을 살았던 신앙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명의 성인성녀들입니다. 하느님만이 아시고 인정해 주는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거룩해지고 훌륭한 교황을 배출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앞에 누워 계신 두 분의 수도자, 바로 이들이 그러한 사람들, 진실한 삶을 살았던 무명의 성인성녀들입니다.


그들은 물론 우리 인간 역사나, 교회사, 수도원사에 기록될 만큼의 크고 거창한 일을 한 분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순한 수도자, 즉 성실한 크리스챤일 뿐입니다. 이들은 다만 생명의 책에 기록될 그러한 사람을 살았던 분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수천 배의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 썩어간 귀중한 한 알의 밀알이며, 이웃과 교회를 위하여 바쳐진 이 시대의 새로운 제물인 것입니다.






1929년에 서원을 하신 우 도미니꼬 수녀님은 내년이면 금경축을 맞게 되실 수녀님입니다. 수녀님의 소임은 거의가 모두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보육원, 성당의 제의방, 부엌, 바로 그곳에서 수녀님은 자신이 택하고, 제단 앞에서 드렸던 그 약속, 즉 순명과 청빈과 정결의 서원에 충실하였습니다.


수녀님은 큰 성당에서, 교우들을 휘어잡고, 본당신부와 마찰하는 그러한 수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시골, 그곳도 성당이 없는 곳, 공소에서 묵묵히 전교하시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 복음의 연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의 벗이 되었고 어머니가 된 분입니다.






수녀님이 전교하였던 공소, 그곳이 이제는 본당으로 발전되어 있습니다.


수녀님의 성품은 한마디로 조용하며 미소짓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은퇴하신 다음에도 베타니아 집에서 쉬시면서 자기보다 더 어렵고 불편한 수녀님들을 도와주시고, 더러운 것을 치우시는 실천과 희생을 계속하셨습니다.


시대의 배경과 받은 교육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는 기도하는 전형적 수도자였습니다. 하루에도 가능하면 두 번이라도 미사에 참여한 신심, 열심히 바친 십자가의 길, 로사리오 기도, 이것이 또한 수녀님의 특징입니다. 아무도 감히 그가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이 분을 무시할 수 없고, 이러한 신심이 케케묵은 옛날 것이라고 비웃어서는 아니됩니다.






조용한 성품의 수도자, 그는 임종시에도 홀로 죽어갔습니다.


간호하시는 수녀님은 평시의 그 성품을 알았기에 잠드신 줄 알고 잠깐 자리를 피하였을 때, 수녀님은 영원히 죽음의 품에 안기신 것입니다.


만발한 꽃이 이제는 열매를 맺어 천상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입니다.






한국 진출 90주년을 맞이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은 초창기 수녀님들에게 더 큰 관심과 배려를 보여야 합니다. 절대로 어제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내일이 없는 시간의 철칙에서, 수도원의 산 역사, 증인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은 또 한 분의 전구자를 천상에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한 공동체의 의식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느끼며 나의 결심, 나의 서원을 새롭게 해보는 것입니다.






오늘 또 이 시간, 우리는 김 데레사 자매를 눈앞에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황님 서거만 아니었다면 김 추기경님께서 이 분을 위하여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셨을 것입니다. 김 데레사 자매는 추기경께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가 병고에 시달릴 때, 매일 병실을 찾아주셨고 위로와 용기, 격려를 주고 끝으로는 병자성사도 집전하셨습니다. 로마로 떠나시기 전날인 8월 11일에 김 데레사 자매에게 마지막, 그리고 뿌듯한 강복을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김 데레사 자매는 독일 Detmold에 자리잡고 있는 보니파시오 재속 수도회에서(Sakular Institutvon Bonifatices) 3년 전에 종신서원을 발한 수도자입니다.


이 보니파시오회는 분도회의 규칙과 정신을 따라 창설된 회로서 동독, 아프리카 등지의 전교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하여 비그리스도교 문화권에 보다 깊숙이, 이질감을 주지 않고 스며들기 위하여 사복을 착용하는 회로서 현재 200여명의 회원이 있고, 한국인은 두 명이 있습니다.






데레사 자매의 수도명은 Maria Laetitia입니다. 그는 20세 때에 독일에 가서 수련과정을 마치고 Kiel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좋지 않은 건강을 무릅쓰고 신앙과 “집념”으로 학위를 끝냈고 전문의 수련과정 중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병고를 고쳐주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의학을 전공한 그는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치료하는 것을 꿈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가 이미 의학을 시작하고 소록도의 형제들을 기억했을 때, 데레사 자매는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을 치료하였던 것입니다.






우 도미니까 수녀님의 성품과 같이 데레사, 아니 마리아 레띠씨아 자매도 조용하고 미소짓는 분입니다.


13~4년의 이국생활의 불편 중에서도 그는 절대로 외국인을 비방하지 않았습니다. 또 유사한 민족주의자, 국수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독일인, 스페인인, 이태리인, 아프리카인 모두를 친구로 가질 수 있었던, 진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크리스챤이었고, 또 진실한 웃음과 미소를 보여 그를 만난 누구에게나 밝은 한국을 심어준 성실한 국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문화권이 다른 환경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이겨낸 분입니다. 자격지심에 떨어지지 않고, 자기 재능을 과시하지도 않고, 끝까지 노력하고, 공부하고, 기도하며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젊은 의학도가, 수도자가, 공들여 준비한 것을 펼쳐보지 못하고 죽었다는데, 우리는 순간 하느님의 섭리에 문득 거부하고 싶은 도전을 하게도 됩니다.


78세를 사시고 돌아가신 수녀님이야 그만큼 사셨지만 왜 좋은 뜻을 품은 착한 수도자가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여기서 데레사 자매의 주보, 성녀 소화데레사가 보다 젊은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깔멜수도원, 외부와는 단절된 생활을 한, 어찌보면 별 보잘 것 없는 삶의 주인공인 24세의 수녀가 전교사제들의 주보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서나 문학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억울한 죽음, 어린이들의 죽음과 울부짖는 이들의 고통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푸는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러한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같이 착한 사람들의 고통은 바로 그리스도의 제사, 삶에 참여하고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3․4년간의 독일에서 병고도 말할 수 없이 컷겠지만 3주 남짓 지낸 성모병원에서의 병상생활중 그가 보여준 인내와 미소는 듣는이로 하여금 감명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는 어머니와 형제, 친척들, 수녀님들, 의사, 간호원, 그 누구에게도 아픔을 나타내지 않으려 했답니다. 아픔 대신 미소를 띄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있었는데 그는 그의 고통을 「참으로 칼로 베이듯이 참을 수 없다.」고 딱 한번 실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의식을 잃고도 네시간동안 죽음의 마지막 고비와 싸우며 영원한 세상을 향해 갔습니다.






우 도미니꼬 수녀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이같이 못다산 생의 미래와 30~40년의 인간의 투쟁을 네시간동안 겪는 듯 했습니다.


이제 그는 잠들었습니다. 그것은 슬픔과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출산의 고통 뒤에 새생명이 얻어지듯 영원한 생명이 탄생키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게 신앙인은 죽음 앞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분 수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플라톤은 이상의 세계를 말하면서,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외적인 물리적 접촉보다는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정신적 접촉, 그것이 더 가치있다고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신앙과 사랑안에 이 두분을 영영 우리 마음에서 우리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모습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생전보다 더욱 더 깊고 짙은 사랑을 느끼고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 도미니꼬 수녀님이 봉사했던 불우한 소년들 속에서, 김데레사 자매가 항상 염원했던 소록도의 나환자들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모습과 함께 활짝 웃음 띤 두분 수도자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두 분 고인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며 기도가 될 것입니다.






「주여, 우 도미니꼬 수녀님과 김데레사 자매의 웃음 띤 모습을 우리 마음 속에 새겨 주시며, 그들의 슬퍼하는 부모, 형제 친척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우리 서로 사랑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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