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하고 아름다운 딸들 (시편 144,12-13.15)

 

고상하고 아름다운 딸들 (시편 144,12-13.15)


                                                                     강종명






궁전의 아름답게 조각된 네 기둥과 같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딸들을 가지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빛나는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있어서 귀중한  보물이다. 그러나, 딸들의 광채는 내적인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이어야 한다.




온 가족 모여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딸이 매니큐어를 바른 자기의 손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자 여기 저기서 다른 딸들이 질세라 자기의 손을 자랑하였다.  서로 자기의 손이 기장 아름답다고 자랑하고 있을 때 늙으신 아버지께서 “너희들은 모두 자기의 손이 아름답다고 하니 누구의 손이 제이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구나, 투표로 결정해 보자꾸나.”하였다.




가족 중에서 여자들은 모든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의 손을 자랑하였다. 그리고 투표를 하려는데 막내아들은,  딸들의 재롱에 조용히  앉아 보고만 계시는 어머니를 향해, “어머니, 어머니, 손도 보여 주세요!”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어머는 웃으시면서 ” 애들아, 내 손이야  어디 늙어서 쭈글쭈글하고 흉해서 너희들의 손하고 비교나 할 수 있겠니!”대답하셨다. 


딸들의 매끄럽고 고운 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머니의 손이었다. 투표결과는 보나마나 어머니의 손이었다. 투표용지 중에 하나에는 ” 어머니의 손, 그 손은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고 씌어 있었다. 투표 결과를  지켜본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주시며 “그래, 이 손은 너희들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한 손이다. 너희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기  위하여 헌신한 사랑의 손이다.  너희들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은 쭈글쭈글해지고 손 마디마디에 배여 있단다.”  젊은 여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늙은 여자는 더욱 아름답다 (휘트먼).




이런 아름다움은 정신적인 열매를 맺는다.  사랑, 기쁨, 평온함, 인내, 친절, 선함, 인자함, 자제력 등의 열매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여자아이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만일여인이 수양을 쌓고, 희생적이고,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 그의 얼굴은 평생을 통하여 빛날 것이다.


한 젊은 여인의 삶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이웃을 위하여 살았고, 어떻게 고난을 받아들였고 얼마나 하느님을 믿었느냐 하는 데서 달라진다. 아름답고 성숙한 방문객이 그의 집에서 작별하고 나간 후에 그 집의 어린 딸이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좋겠네! 인자하고 ,초연하고 ,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인이 되었으면 좋겠네!”하고 그의 어머니께 말했다.  분별 있고 재치 있는 어머니는 대답하기를 “네가 그런 여인으로 성장하고 싶으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 방문객이 저렇게 까지 성숙하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 같지 않구나”라고 했다.




주어진 시간을 슬기롭게 쓰면, 이 여인은 만년에 가서 광채를 발할 수 있다.  그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고(성공의 댓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능력의 원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지식의 샘), 선한 일을 즐기며, 동정과 인자함,  등불을 켤 수 있는 시간(참다운 여성의 참 빛), 즐겁게 웃는 시간(영혼의 음악)을 낼 수 있는 여인이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딸들 (시편 144,12-13.15)


                                                                     류달현






교형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이어트에 성형수술에 정신이 없습니다. 정작 내면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광채를 가꾸기보다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러한 때에 시편에 나오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딸들에 대한 이야기는 시사해주는 바가 클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부모들에게 큰 행복이 되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딸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잠언 1,8-9에서는 이스라엘의 여성을 살아있는 성서라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의 딸이요,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을 섬기는 딸로 계속 하느님으로부터 꿀을 공급받아야 하며 그 민족에게 즉 자녀들에게 젖의 양식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결코 어미의 법(곧 토라)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어머니들이 토라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으며 그들의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히틀러 통치 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유다인들은 대량 학살당했습니다. 단지 유다인이라는 이유로 가스실에서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불안에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가스실로 끌려 들어가면 내일은 그 자녀가 죽음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인 어머니들은 태연한 태도로 오늘 자녀에게 토라를 가르쳐 주었으며 음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삶의 의미가 하느님의 법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먼저 가니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죽음의 가스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끌려가면서 “나는 믿노라”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오늘 죽을 어머니가 내일이면 죽을 자식을 앞에 놓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입니까? 그렇게 배운 하느님의 법을 그 자녀들이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어머니들의 교육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딸들은 아름답고 고상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우리 아들들은 햇순처럼 자라나고 딸들은 모퉁이의 네 기둥, 궁전의 얼굴”(144, 12)이라고 읊고 있습니다. 궁전의 아름답게 조각된 네 기둥과 같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딸들을 가지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야훼를 하느님으로 모시는 이 백성 참으로 복스러워라”(144, 15)라고 하며 야훼 하느님을 모시는 이스라엘을 빛나는 딸을 지닌 어머니와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빛나는 딸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있어서 귀중한 보물입니다. 그러나, 딸들의 광채는 내적인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정신적인 열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기쁨, 평온함,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인자함, 자제력 등의 열매입니다.


그러기에 내적인 광채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모든 여자아이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녀의 삶이 어떤 것이 되느냐 하는 것은 그녀의 환경과 그녀의 훈련과 그녀가 무엇을 표준으로 삼고 사느냐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신들의 딸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토라를 기준으로 하여 교육 환경과 훈련을 시켰던 것입니다. 정신적인 광채의 근본요소는 명백히 규정할 수 없는 빛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새빨갛게 빛나시오,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시오”(로마 12: 11)라고 말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빛을 얻는 방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빛나는 광채를 얻는 길임을 명백히 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주님을 따라 산다면 외적인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내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날 것입니다. 만일 여인이 수양을 쌓고, 희생적이고,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 그녀의 얼굴은 평생을 통하여 빛날 것입니다.




사실 시편의 이 부분은 왕권의 은혜 주제와 그리고 그 백성에게 내려진 축복 주제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활력이 넘치도록 부여받아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는 세대의 지상적 부, 즉 풍성한 추수의 축복, 풍부한 양떼, 아들과 딸들의 건강하고 아름다움 그리고 마을과 도시의 평화 등은 모두 신의 은총이 내려 준 축복의 가시적 표징들입니다. 하느님으로 인해 그리고 그와의 교제로 인한 그 기쁨은 그의 구원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서 찬양의 노래로 그를 찬송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한 젊은 여인의 삶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이웃을 위하여 살았고, 어떻게 고난을 받아들였고 얼마나 하느님을 믿었느냐 하는 데서 갈라집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처럼 죽어가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전해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딸들을 고상하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도록 정숙하게 기르고 엄하게 다스리고 계시는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빛나는 내적인 광채임을 깨닫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딸들이 내면의 아름다운 광채를 기르는 데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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