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의 하느님의 심판
김성현
심판을 바라보면 우리는 쉽게 단죄, 두려운 것, 내쳐짐 등의 극단적인 의미를 쉽게 떠올립니다. 그래서 이러한 심판의 개념을 지니고 구약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바라보면 하느님은 인정 없으시고, 무서우며 두려운 존재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죄의 구렁텅이로 깊숙이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자비로운 자비의 표현이며 의로움의 방식입니다.
마카베오 하권 6,12-17을 보면, “하느님의 징벌은 우리 민족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찍질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벌을 내리셔서 우리의 죄가 절정에 이르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라고 하심으로써 지금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징벌이 보다 깊은 죄악으로 그들이 빠져들지 않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심판은 의인을 더욱 올바른 길로 이끄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항하는 이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징벌로써의 심판의 모습은 민수기 16,1-35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 출신의 ‘코라’와 ‘다단’ ‘아비람’과 이들을 추종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이름 있는 이백 오십 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어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모세를 거슬러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하느님이 선택하신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야훼께서 온 회중 가운데 계시어 온 회중이 다 거룩한데, 어찌하여 당신들만이 야훼의 회중 위에 군림하오?”
모세는 이렇게 하느님을 뜻을 거스르며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이들에게 “내일 아침 야훼께서 알려 주실 것이다. 누가 당신의 사람이며 누가 거룩하며 누가 당신 앞에 나아갈 수 있는지 알려 주실 것이다. 당신께서 택한 사람을 당신께로 나오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코라의 무리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 향로에 향을 피워 가지고 하느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온 이스라엘 회중이 모인 자리에 코라와 그의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거스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벌하시기 전에 온 회중을 코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거처 주변에서 물러서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당신의 뜻을 전해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말하기를, “너희는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이 무리의 장막에서 멀리 물러나라. 만일 이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죽듯이 죽게 된다면, 주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땅이 입을 벌려 이 사람들을 삼켜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지게 한다면 이 사람들이 하느님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하였습니다.
이 말을 마치자 코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하느님을 거슬렀던 자들이 딛고 있는 땅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땅은 코라와 그에게 딸린 사람과 재산을 모조리 삼켜 버렸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을 거슬러 코라를 따르던 이들이 들고 있던 향로에서 주님의 불길이 나와 코라와 함께 하느님께 거역하고 대들었던 이백 오십 명의 사람들을 태워버렸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대하는 하느님의 심판은 하느님 뜻에 순명하지 않고 거스르는 이들, 그리고 하느님께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고 대항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며 불의하게 행동하였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직접 심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심판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5,32-36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안식일에 나무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에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안식일에 나무를 한 사람을 자신의 결정대로 처벌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두고 하느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그를 사형에 처하여라. 온 회중이 그를 진지 밖으로 끌어내다가 돌로 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모세는 온 회중과 함께 하느님이 심판하신 대로 그를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로마서 14,10에서도 심판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형제를 심판할 수 있으며 또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면서 심판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항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자신이 직접 심판하지 않고, 진정 삶 속에서 잃었던 아들 비유의 탕자처럼 하느님과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청하고(루가 15,11-25), 예수님처럼 자신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루가 22,42b), 악령 들린 자식을 둔 아버지가 외치는 것처럼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라고(마르 9,23-24)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한다면 이 때 하느님의 심판은 악인들에게 주어지는 무서운 단죄로써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은혜로, 그리고 사랑 가득한 은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심판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침묵 중에 묵상해 보고, 하느님께 대한 나의 자세를 다시 한번 정립해 보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