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뱀 사건 (민수 21,4-9)

 

구리뱀 사건 (민수 21,4-9)


                                                                     김동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씬 광야에 이르러 카데스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거기에서 모세는 에돔 왕에게 에돔 땅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전갈을 보내면서, 사람이나 가축이 물을 마실 경우에는 값을 치르겠다는 부탁하였다.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서는 에돔 땅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돔 왕은 지나가지 못한다고 하며 무장한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진을 쳤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카데스를 떠나 에돔 땅의 경계선인 호르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 땅을 지나 갈 수 없기에 에돔 땅을 둘러서 가려고 호르산을 떠나 홍해바다 쪽으로 돌아 계속 길을 갔다. 그 길은 사막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뜨거운 모래로 인해 발이 뜨겁고 목이 타는 듯이 말랐다. 모든 것은 막막했고 가나안은 더욱 멀게만 느껴졌기에 그들은 서서히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아, 지긋지긋한 이 광야!” 탄식은 탄식을 불러 이제 사람들은 하느님이 명령하여 달기 시작한 옷자락의 술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옷자락의 술을 보면서 야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도록 한 당부(민수 15,37-41)는 지친 그들에게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그들의 굶주릴 때 하느님이 내려주신 만나(출애 16,1-36)도 먹기 싫다고 거부한다. 마침내 불만이 폭발하여 하느님과 모세를 욕하면서 제멋대로 흩어질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금 에집트에서의 편안한 생활과 고기와 음식을 약속의 땅보다 더 원했던 것이다.




“어쩌자고 우리를 에집트에서 데려 내 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죽일 작정입니까?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습니다. 이 거친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무수한 뱀들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였다. 뱀에 물려 신음하고 죽어가는 백성들은 그 불뱀들이 하느님이 내리신 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야훼와 당신께 대든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뱀이 물러가게 야훼께 기도해 주십시오”하고 방금까지 몰아세웠던 모세에게 매달려 자신의 죄를 반성하면서 살려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모세는 백성들의 뉘우침을 보고 하느님께 불뱀에게 물린 자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




뱀 재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하느님의 약속은 이제 모세가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누구나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치명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다는 조건과 결부되어 있다. 그래서,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쳐들었다. 




“보라, 머리를 들어 이것을 보라!” 모세의 외침에 뱀에 물려 신음 속에 죽어 가는 몸부림치던 백성들은 고개를 들어 높이 쳐 들린 구리뱀을 쳐다보았다. 보는 순간, 체내의 독이 사라지면서 열과 고통도 깨끗이 나았다.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하느님에 의해 살아난 것이다. 




이런 모습, 즉 뱀에게 물려 당하게 되는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판단 아래 확정되는 복종의 시험과 결부되며, 이는 동시에 광야의 위험하고도 무시무시한 존재에 대해서도 위엄 있게 군림하시는 야훼 하느님의 힘을 증거한다.   




이 구리뱀 사건의 의미는 첫째, 구리로 만든 뱀은 독이 없다는 점, 둘째, 구리뱀을 단 지팡이는 십자가를 예고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이 표징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한 점의 독(죄)도 없는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뱀을 바라보면 살아남는 것과 같이, 예수의 십자가를 온전히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3장14-15절)




지금도 유럽에는 대부분의 약국 앞에 녹색으로 그려진 ‘뱀이 감긴 십자가’표지를 볼 수 있다. 만일 그것은 본 사람이 민수기 21장 4-9절의 구리뱀 사건과 요한복음 3장 14-15절을 알지 못한다면 이 표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약품 표시의 안내서나 군대의 의무대에서나 엠블런스(구급차)에 장대에 달린 뱀 모양의 문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바로 구리뱀 사건과 연유하여 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구리뱀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계속 전해지고 있으며, 그 외양적 형태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거부하고 우리 자신만을 위해 혼돈한 세상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불뱀에 물려 – 죄에 물든 -있는 것이 되며, 반면에 이런 혼돈한 세상에서 구리뱀을 – 죄 없는 분, 즉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려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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