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봇의 포도원 (1열왕 21,1-24; 23,29-38)

 

나봇의 포도원 (1열왕 21,1-24; 23,29-38)


                                                                     김동희






오늘은 구약성서 열왕기 상권 21장에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가지고 강론을 시작하려 합니다. 먼저 이야기에 앞서 그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원전 922년경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 죽자, 왕국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됩니다.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두 왕국 가운데 북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은 북 이스라엘의 왕권을 공고히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리게 했던 오므리왕조의 두 번째 왕 아합이었습니다. 아합은  페니키아의 이세벨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는  한편, 남 유다 왕국과 제휴하면서 북방의 시리아를 견제하는  외교면에서도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봇이라는 사람이 아합 왕의 궁전 옆에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이 탐이 나서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원을 나에게 넘기게. 그 대신 내가 더 좋은 포도원을 그대에게 주던가 아니면 시가대로 값을 지불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들의  유산을 당신께 넘겨드리는 일을 주께서 금하셨습니다” 하면서 아합 왕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거절의 이유를 자세히 말씀드리면,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 안에는 땅의 주인은 하느님이다, 하느님께서 그 땅을 에집트에서 해방된 조상들에게 지파별로 나누어주셨다, 따라서  아무도 땅을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 없다는 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봇의 거절은 ‘아합 당신이 비록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그 위에 하느님이 계십니다’라는 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에 아합은 불쾌하여 궁으로 돌아가서 침상에 누워 음식도 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세벨이 와서 아합에게 “무엇 때문에 불쾌하시어 음식도 들려고 아니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나봇이 제 포도원을  나에게 넘기려 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아합이  말하니 이세벨은,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소서. 내가 당신께 그 포도원을 얻어 드리겠나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방 여인의  눈에는 왕이 그깟 일 하나  해결도 못한 채, 불쾌하여 음식도 마다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비쳐졌을 것입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성읍의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써  보냈습니다; “악인 두 사람을 세워  나봇이 하느님과 임금을 모독하는 말을 하였다고 증언케 하라. 그 다음 나봇을 끌어내어 돌로 쳐죽여라.” 장로들은 이세벨이 명한 대로 행하였으니, 두 악인이 거짓증언을 하였고 나봇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합은 일어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하느님의 명을 받은 엘리야 예언자가 아합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죽이고 불의한 재산을  차지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아먹은 그 자리에서, 너의 피도 핥아먹으리라. 그리고 이세벨은 개들에게 뜯어 먹힐 것이요, 너의 온 집안이 멸망하리라’ 하시나이다.” 성서는 이 말씀이 후에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전해줍니다. 아합 왕은 시리아인들과의 싸움에서 중상을 입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피가 흘러내린 수레를 사람들이 씻을 때 개들이 와서 아합의 피를 핥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사뭇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의 모습은 억울한 이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시는 고마운 분으로, 그리고 동시에 그 피에 대해 복수하시는 잔인한 분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있어 하느님의 두 가지 모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까? 어떤 분께는 고마운 분으로, 또 다른  분께는 무섭고 두려운 분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신의 살아온 삶에 억울함이 많으신 분은 나봇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하느님께 희망을 갖게 하는 복음으로 이 이야기가 들려왔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말씀을 빌어 그러한 분들께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나의 모습이 아합이나 이세벨과 같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보아야만 합니다. 흔히 우리는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눈이 밝지만 자신의 눈에  끼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우를 자주 범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쉽게 합리화하면서도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모르는 수가 많습니다. 물론 아합 왕이나 이세벨과 같은 잘못이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이들이나 권력의 불의함을 고발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발과 도전은 잔인한 징벌을 위함이 아니라 그 사람이나 권력이 회개하여 용서를 체험하고 변화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하느님의  잔인함을 말하는 것이기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하느님 말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인간  세상을 굽어보시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속에 선다면,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날세워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 노력한다면, 비록 우리가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위로해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소부재 하심은 우리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우리를 돌보시며 함께 하시는 자비로운 손길입니다. 우리가 숨으려 한다면 하느님은 두려운 분으로 체험될 것이지만, 드러내고 그분 앞에 겸손되이 나선다면 우리는 구원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고 희망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죄를 더듬노라면 그것을 싸매 주시고 청소해 주시는 하느님을 볼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1열왕 21,1-29)


                                                                     김용석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엘리야를 통해서 당신께 순종하고 정의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엘리야는 포도원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오므리 왕조의 몰락을 예견하고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초래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즈르엘 사람 나봇은 아합 왕의 별궁 근처에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자신의 별궁 터를 넓히기 위해서 “그대의 포도원은 내 별궁 근처에 있으니 나에게 양도하게.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원을 마련해 주지. 만약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시가로 따져서 현금으로 계산해 줄 수도 있네”(1열왕 21,2) 라며 청합니다. 그러나 나봇은 아합왕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나봇에게 그 땅은 ”선조들의 유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땅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사유재산’이 아니었습니다. “땅은 아주 팔아 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하는 식객에 불과하다”(레위 25,23). 땅의 주인은 야훼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에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고 모든 이들에게 그 땅을 나누어 주셨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땅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지, 땅을 빼앗거나 사유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나봇은 이러한 땅의 개념이 있었기에 아합 왕의 청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아합 왕은 자신의 청을 거절당하자 “침울한 심정이 되어 별궁으로 돌아 가 자리에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음식도 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이세벨은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지 못해서 상심하여 음식까지 들려고 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세벨이 말합니다. “당신은 이스라엘 왕답게 처신하십시오”




이세벨은 페니키아 왕의 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페니키아와 우호조약을 체결하였고 아합 왕과 이세벨의 결혼으로 그 관계가 더욱 돈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합 왕은 이세벨을 위해 바알신의 성전을 세우고 숭배하게 됩니다. 바알신을 섬기는 이세벨에게 왕의 권력은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합왕에게 ‘이스라엘의 왕답게 처신’하라 충고하며, ‘나봇의 포도원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세벨은 “무뢰배 둘”을 시켜서 나봇이 하느님을 모욕했다고 거짓증언을 하게 한 후 돌로 쳐죽였습니다. 나봇을 죽이면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엘리야가 포도원을 차지하려는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나는 네 후손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아합의 가문에 속한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씨도 없이 죽이리라”, 이세벨에게도 “개들이 이즈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을 찢으리라”라고 예언을 합니다. 아벨의 피로 물든 땅이 소리쳤듯이(창 4,10), 불의한 행동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아합왕은 “자기 옷을 찢으며 굵은 베옷을 걸치고 단식”을 하며 자신의 죄를 뒤늦게 뉘우치지만, 훗날에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가 아합왕의 아들인 요람과 이세벨을 죽여 나봇의 포도밭에 던짐으로써 야훼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합왕이 아내의 꾐에 넘어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땅을 차지하려 하고, 자신의 왕권을 높이려 한 것은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의한 곳에 개입하시어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해 주시고, 억울한 이들을 풀어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느님의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계속 전해졌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하느님의 정의가 살아 숨쉬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먼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생활이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신앙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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