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카스 (친절에 관하여)
문형균
오늘의 이야기를 잘 살펴봅시다. 수넴지방의 한 여인과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힘있고 엄청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아브라함과 세 손님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해 줍니다. 엘리사를 보자마자 그 수넴여인은 엘리사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봅니다. 그가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성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의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어떻게 그가 하느님을 알아보았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하느님의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은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여간에 여인은 엘리사에게 식사대접을 해드리겠다고 간청합니다. 또한 엘리사 역시 이 여인의 믿음을 보았나 봅니다.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러서 식사를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남편에게 아예 엘리사가 며칠 묵었다가 갈 수 있는 배려를 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정성에 감동한 엘리사는 그녀에게 보답할 것을 찾게됩니다. 그녀가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아이를 점지해줍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대화들 역시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흡사합니다. 접대에 대한 감사로 여인에게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듣는 여인은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도 역시 흡사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엘리사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여인은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몇 시간만에 죽게 됩니다. 아마도 여인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무릎에서 죽은 아들을 보고 가슴이 저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여인은 절대로 다급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머리 속에 떠오르자 곧장 그를 찾아갑니다. 자신이 아들을 가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점지해 준 엘리사가 이번에도 다시 아들을 살려줄 것이라는 엘리사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발휘합니다. 그는 남편에게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않고, 단지 하느님의 사람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는 가르멜 산으로 엘리사를 찾아가서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토로합니다. “선생님, 제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까? 공연히 가슴만 부풀렸다가 낙담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엘리사는 자신의 예지력으로 그 여인의 사건을 알 수 없었음에 안타까워합니다. 그만큼 엘리사도 그 여인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엘리사는 자신의 종 게하지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주며 보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것이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엘리사가 자신의 아들이 있는 곳에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이에 기꺼이 엘리사는 여인을 따라 갑니다. 게하지가 먼저 아들이 있는 곳에 가서 아들 머리맡에 지팡이를 두었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게하지는 돌아와서 엘리사에게 사실을 보고합니다. 결국 엘리사는 자신이 직접 아들이 있는 방으로 가서 그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아이 위에 엎드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방안을 걸어다니다가 다시 위에 엎드립니다. 이러기를 일곱 번을 거듭하자, 아들은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탈리타 쿰”하고 말씀하셨던 회당장의 딸을 고치시는 모습과 사도 베드로가 도르가라는 여인을 살려내는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오늘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구하라, 얻을 것이다. 청하라, 받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그 처음부터 분명히 엘리사가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물론 그 여인은 아들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주신 첫 번째 축복입니다. 이것이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이유 없이 죽었습니다. 여인은 죽은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엘리사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만이 자기 아들을 죽음에서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사람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청을 들어줄 때까지 그의 다리를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죽은 아들을 살려냅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불가능한 것들 속에서 하느님만이 죽은 아들을 살려주실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나아갑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도 그 아들의 소생을 허락하십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파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불가능을 그저 불가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그 대상의 아픔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라면 불가능도 가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 사랑의 기원이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다면, 그는 완전한 사랑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