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가진 과부 (궁핍과 굶주림 : 2열왕 4,1-7)
김옥주
“현명한 어머니 현명한 선택”이라는 우유회사의 광고를 보신 기억이 있으신 지 모르겠습니다. 다변화된 사회, 개인의 인격과 개성이 중요시되는 사회, 그렇지만 한편으로 인쇄, 홍보매체의 발달로 인한 보편화된 사고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 안에서 현명한 선택, 지혜로운 선택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는 것을 가끔은 느낍니다.
특별히 어머니들은 가정생활 안에서 남다른 선택의 지혜를 가져야합니다. 작게는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는 일에서부터, 집안의 가구나 가전 제품을 구입하는 문제, 그리고 요즘 특별히 한국사회 안에서 자녀의 교육과 관련된 선택의 문제는 가장 어머니들이 신중을 기하시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을 보내기 위해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는 어머니의 열성,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줄 수 있는 학원, 과외 선생님, 참고도서 선택에 대한 어머니들의 관심이 그 어느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한 과부의 이야기는 어머니들의 선택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루는 예언자 수련생의 부인 하나가 엘리사를 찾아와 호소하였습니다. “선생님 제자인 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시다 시피 그이는 야훼를 경외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이에게 빚을 주었던 사람이 제 두 아들을 종으로 끌어가겠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도울 수 있겠소? 집안에 남아 있는 게 무엇이오?”하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집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 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엘리사는 “돌아가서 당신의 모든 이웃으로 다니면서 그릇을 빌어 오시오. 빈 그릇을 되도록 많이 빌어다가 두 아들만 데리고 집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기름을 그 모든 그릇에 차례차례로 가득히 따라 부으시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집으로 돌아와서 두 아들만 데리고 집안에 들어 가 문을 잠갔습니다. 그리고는 두 아들이 가져다주는 그릇에 기름을 가득가득 부었습니다. 그릇 마다 기름을 다 채우고 나서 여인은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릇을 더 가져오너라.” 아들이 “그릇이 더 없습니다”고 하자 기름이 나오기를 멈추었습니다.
여인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서 이 일을 보고하자 그는, “가서 기름을 팔아 그 돈으로 빚을 갚아서 두 아들이 종으로 끌려가지 않게 하시오. 남은 것을 가지고 모자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하고 말하였습니다.
기름은 보통 올리브유를 말하며, 이 기름은 가정 살림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기름으로도 사용되었지만, 현금과 같은 통화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식탁에서는 버터 대신 사용되었고 고기나 음식에 쳐서 먹기도 하였습니다. 집안에서 등을 밝히는 연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올리브 역시 다른 식물과 같이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그 해에 가뭄이 들어 기름이 귀했습니다. 살림을 하는 사람으로 기름이 떨어진다는 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식들이 종으로 팔려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자식들을 종살이로부터 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이 과부는 도움을 요청하기에 적합한 사람을 선택했으며 엘리사는 이 과부의 어려움을 돌보며 기적을 행했습니다.
아마도 이 과부는 엘리사가 자연법을 초월하여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그리고 미래를 점 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려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과부의 남편과 과부 그리고 두 아들은 야훼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으며 특별히 과부의 죽은 남편은 엘리사를 스승으로 모셨던 사람이었습니다. 제자의 가정이 야훼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 스승 역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자식과 가정을 위한 선택의 기준은 하느님의 시각에 따른 것이어야 하며, 특별히 도움을 청할 사람은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 하느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을 사람을 선택하고 그런 사람에게 부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신뢰를 두고 두 자식과 가정을 위해 간청하고 엘리사의 지시에 따른 이 과부가 기름을 그에게 더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히 소유하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녀의 빚은 여유 있게 갚아졌고 그의 아들들은 빚으로 인한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남은 생애도 선함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에게 도움을 줄 한 사람을 추천 받았다면 그 사람과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만나게 된 과부는 엘리사의 지시를 그대로 실행했으며 엘리사의 요구에 대한 불신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아들들에게 병을 모으는 일과 기름을 병에 담는 일을 거들도록 시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엘리사의 지시대로 아들과 함께 엘리사가 요구한 것들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이 과부에게서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혜는 가정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며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줄도 알아야 하고 가족의 문제를 가정의 문제를 가족의 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노력하고 하느님과의 대화, 친교 안에서 하느님이 주신 것, 사람을 선택하고 주님께서 그 선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믿음을 둡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련과 고통들을 혼자의 힘만이 아닌 공동체와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겸손 되이 자신의 부족함 고백하고 기꺼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강론을 마치며 한 어머니의 소원, 기도를 소개합니다. 생활 중에, 특별히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 주님, 저를 도우시어 제가 연약한 한 인간 일 수 밖에 없다는 저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미래를 예견할 수도 없으며 잘못된 과거를 모두 되바꾸어 놓을 수도 없습니다. 나의 매일 매일의 노력이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저 저는 제가 할 바를 할뿐입니다.
저의 자녀들을 인도하시어 비록 많은 실수와 결점 중에라도 제가 그들을 사랑한 탓에 그렇게 하려고 하였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제가 올바로 자녀들 하나하나의 성장 발달 그리고 독립을 위해 협조하게 하시고, 비록 나의 자녀일지라도 그 자녀와 내가 서로 부족한 인간들로써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들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저의 결점을 인정하도록 용기와 겸손을 허락하시고, 자녀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대담성을 주소서.
두 아이를 가진 과부 (궁핍과 굶주림 : 2열왕 4,1-7)
최재영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해서 말할 때 흔히들 어머님의 사랑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아마도 그 사랑은 우리 인간의 한계인 이기심과 자기보존의 욕구를 뛰어넘는 그런 마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그 어머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고향이 이북입니다. 평양 근처의 조그마한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그리고 역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던 남편을 만나 다섯 자매를 두고 행복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평온했던 삶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남편은 지주라는 이유로 인민군들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게되었습니다. 졸지에 남편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마리아 자매님은 어린 다섯 자매를 안고, 업고, 또 손에 잡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정신없이 떠밀려 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도중 마리아 자매님은 공습으로 아수라장이 되 버린 피난길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울어대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산길로, 산길로 몸을 숨기며 가던 도중 국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전해들은 군인들은 사정이 딱했지만 자신들도 어떻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마음에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병사가 용기를 내시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묵주를 자매님의 손에 꼭 쥐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때는 겨울이라 너무도 추웠던 날씨에 자매님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산골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아이들은 울다가, 울다가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자매님은 아이들이 잠들면 추위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봐 안절부절하며 아이들을 재촉했지만, 어린 자매들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씩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함박눈과 모진 바람은 너무도 매정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다섯 자매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안나는 온기가 느껴지는 햇살을 받으며 잠이 깨었습니다. 어린 동생들은 아직도 자고 있었습니다. 눈을 돌린 안나는 어머니가 처음 보는 물건을 손에 꼭 쥐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동생들과 자신을 꼭 안으시며 어딘가를 향해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한 번도 성당에 가보지 않았었지만 어린 자녀들을 위해 밤새워 하느님께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묵주가 무슨 물건인지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지만 그 묵주를 꼭 움켜지고는 밤새 하느님께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얼어죽지 않게 해주십사 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후에 성당에 다니며 세례를 받고 안나라는 세례명을 받은 큰딸은 그때의 일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어머니가 된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이지,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들의 삶 곳곳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 중에서 가장 큰 모습이 있다면 그건 우리 어머니의 사랑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따뜻한 이야기를 열왕기에서 만나게 됩니다. 어린 두 아들은 둔 홀어머니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예언자 엘리사의 문하생이었는데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빚쟁이가 와서 두 아들을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합니다. 어머니는 엘리사 예언자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다급하게 묻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구하겠다는 일념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애절함은 바로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께 호소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호소 안에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는 신뢰가 담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 어머니의 호소에 하느님께서는 흘러 넘치는 올리브 기름의 축복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예언자 엘리사와 두 아들을 둔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끝없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성체성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사라지지 않을 생명으로 다가오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오늘 말씀의 올리브 기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올리브 기름은 어떻게 해서 흘러 넘치게 되었습니까? 무엇이 예언자를 통한 기적을 불러 일으켰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 사랑의 가장 구체적 표현양식인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당신의 태중에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시던 순간부터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시던 순간까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으로 그 아드님을 사랑하신 성모님의 사랑과 같은 그런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믿음에 연결된 예수님과 우리들의 사랑관계입니다. 마치 연인처럼 그렇게 끝없이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 어머님들께서 간직하신 그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체험하는 하느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그런 무조건적인 자비의 모습입니다. 그 사랑은 믿음의 기초이며 완성입니다. 그 사랑은 성체성사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견고히 하는 신뢰의 기둥입니다. 그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사랑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은 바로 신앙입니다. 사랑에 기초하고, 사랑에 의해 완성되는 신앙, 즉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작은 병 속의 올리브 기름을 끝없이 흘러 넘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를 하느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한 겨울의 추위 속에서 어린 생명들을 지켜냅니다.
시간이 흘러도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고 늘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들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가장 완전한 진리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진리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들을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여러 가치들이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완전한 진리이신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머물러 있을 때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늘 그렇게 우리들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진리입니다.
두 아이를 가진 과부 (궁핍과 굶주림 : 2열왕 4,1-7)
민형기
기적이란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의 힘이 있어서 작용했다고 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비상하고 놀라운 사건을 말한다. 어떤 문화에서든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믿음은 실제로 모든 종교가 가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두 아이를 가진 과부이야기에도 기적이야기가 등장한다. 남편이 진 빛을 갚지 못해 두 아들 마저 빼앗길 위기에 놓여 있는 사렙다의 과부.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밖에 없다. 그녀는 미래가 암담하다.
자신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두 아들마저 빼앗기면 살아갈 희망이 없다. 그러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예언자 엘리사를 찾아가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엘리사 예언자는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엘리사는 그 과부의 이야기를 듣고 애련한 마음이 들어, 그녀에게 한가지 방법을 말해 준다. 그 과부는 엘리사가 제시해 준 방법에 대해서 따져보고 생각해 볼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엘리사 예언자가 일러 준 대로 마을에서 그릇을 모두 빌려다가 문을 모두 잠근 다음, 마지막 남은 기름을 붓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기름은 아무리 부어도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그 많은 그릇을 채우고 더 담을 그릇이 없게되자, 기름이 떨어진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느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과부. 그리고 하느님의 도움으로 절망의 상황을 벗어난 과부. 이제 과부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을 넘치도록 주셨기에,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주신다. 우리들이 더 이상 필요를 느끼지 못할 때까지 주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디에선가 일어났던 기적들을 듣는다. 몇 년간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던 뇌사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그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던가 또는 수십 년을 마비된 다리로 휠체어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벌떡 일어나 건강하게 걸어다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T․V나 신문지상을 통하여 접하게 된다. 이런 기적들은 우리들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은 에집트에 있을 때, 당신께서 베푸신 기적들을 깨닫지 못하였고”(시편 106,7)라고 시편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기적을 볼 수 있는 눈이 과연 있는가?
기적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하루를 밝혀주고, 함께 살아가는 피조물을 키워주는 태양 빛, 아침이면 어김없이 허락되는 하루의 삶, 수없이 엉겨버렸다가 어느라 갑자기 풀려버리고, 회복되어 새롭게 형성되는 인간관계….
그 모든 것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 일들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처럼 기적은 우리들 주위에서 정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나고 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적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그것을 볼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를 탈출하여 도망을 가다가 홍해라는 절망의 상황을 만나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 권능의 팔을 뻗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주셔서, 지혜서의 저자가 “온 백성이 이 놀라운 기적들을 눈앞에 보면서 단결하여 주님의 손길의 보호를 받으며 건너갔다.”(지혜 19,8)라고 그 때를 회상하여 적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당신 의 손길을 뻗치시어 도와주신다. 그 도움을 지금을 성령을 통해서 주고 계신다.
우리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 모든 것을 관할하시며,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하느님의 창조적인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넘치도록 베풀어주시기 때문이다.
기적. 그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죄 많은 내가 지금 이 시간에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하느님께서는 저 사렙다의 과부에게 행하셨던 기적을 지금 이 시간 나에게도 베풀어주고 계신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모자람 없이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적이라고 받아들이고 믿을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신앙을 가졌을 때, 우리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매일매일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보다 더 풍성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고, 매일의 삶 속에서 기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