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 (두 창녀와 그의 아들들 : 1열왕 3,16-28)
김옥주
오월은 가정의 달이며 특별히 많은 행사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버이날 꽃을 달아드린다는 것이 나이에 걸맞지 않고 어색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의 초등학교시절을 되돌아보면 어린이날에 대한 기대보다 어머니날에 대한 기대가 더 컸던 것 갔습니다. 어린이날은 평일 날 그냥 하루 학교 수업을 하지 않는 다는 것 이외 의미와 느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날에는 물론 부모님께서 주신 용돈으로 준비한 지금 생각해 보면 조잡스럽기까지 한 플라스틱으로 된 카네이션이었지만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 드리고 자신에 대해 대견해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나의 꽃 선물을 기뻐하시는 부모님들을 모습을 뵈면서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저희에게 좋은 것을 주셨으며 육적인 생명력 뿐 아니라 신앙 안에서 성장하도록 영적인 생명을 키워 가는 데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작은 카네이션 한 송이는 그런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저의 작은 정성과 보답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력이 가치를 지니도록 키워주시는 분, 자녀들의 생명의 가치를 인정해 주시고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부모님들의 자식 사랑의 근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생명이란 영적인 생명을 포함한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집에 살던 창녀 둘이 솔로몬에게 나왔습니다. 그들 두 어머니는 사흘 간격을 두고 그들이 난 갓난아기의 운명을 놓고 입씨름을 벌렸습니다. 그 아들들 중 하나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한 어머니가 살아 있는 아이가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가 “아닙니다. 산 아이가 내 아들입니다”라고 우겼습니다. 아무 증인도 없는 데서 이 어머니들은 아들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어머니가 밤에 잠을 자다가 그의 아이를 깔아뭉개어 그의 아들을 죽게 했던 것입니다.
한 어머니는 그의 처지를 설명하여 말하기를 “그런데 그날 밤, 이 여자는 자기의 아들을 깔아뭉개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여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이 계집종이 잠자는 사이에 제 곁에 있던 제 아들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에 아들을 가져다가 자기 품에 두고 죽은 자기 아들을 제 품에 놓고 간 것입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 젖을 먹이려다 보니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서야 그 아이가 제가 낳은 아이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어머니 역시 살아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지혜가 절정에 달해 있던 솔로몬은 칼을 하나 가져오라고 한 다음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하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산아이의 어머니는 제 자식을 생각하여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여 솔로몬에게 청하였습니다. “임금님 살아있는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니 나누어 갖자”고 하였습니다.
결과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솔로몬은 “살아있는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한 처음 여자에게 그 아이를 주어라. 그가 그 살아있는 아이의 어머니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에게 하느님의 슬기가 있어 옳은 판단을 하고 정의를 베푼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아이의 친어머니도 슬기롭게 그 상황을 잘 처리해 나갔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아니 자신이 산고를 겪으면서 생명을 준 아이의 생명을 소중함을 하게 생각한 어머니의 참되고 본질적인 사랑이 아이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되찾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애원, “제발 그 아이를 죽이지만은 말아주십시오”하는 말이 솔로몬 왕에게 올바른 판단과 정의를 베풀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아이를 극진히 사랑했고, 그 사랑은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고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 다른 한 여인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사랑이 정의에 입각한 옳은 판단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고 솔로몬의 마음에는 정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오 복음 7장 7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려라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열리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해서”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대와 지역적 배경을 떠나서 창녀라는 직업은 사회의 고운 눈초리를 받지 못했습니다. 솔로몬 시대 역시 여러 부류의 창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사회적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아니 무시당하는 부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직업을 가진 여성 역시 자식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으며 솔로몬은 참된 어머니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명 판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재판정에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찾은 여성은 자신의 이익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식을 되찾기 위한 계산된 행동과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가지 일념 그것은 아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자신이 못났더라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생명을 주었고 그 생명이 잘 보존 되도록,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사회 안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많은 교육을 통하여 정신적이고 영적인 생명력도 키워주려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 까지 자녀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려 합니다. 이러한 부모님들의 사랑이 자식의 죽음을 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의 사회 안에는 자식의 육적인 생명은 죽이지 못하지만 자녀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식에게 좀 더 좋은 것을 준다는 명목아래 자녀보다는 자신들에게 좋은 것을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만을 생각함으로써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사례들이 있음을 신문이나 대중매체를 통하여 보게 됩니다. 정말 마음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부모님의 사랑은 자녀의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부모님의 사랑은 자신을 위하여 자녀에게 자신의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자녀들의 육적이며 영적인 생명, 생명력 키워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가진 한 부모들은 기도 안에서 자녀들을 위해서 좋은 것을 선택할 지혜를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안에서 얻어진 결과가 자신과 자녀들에 순간적인 아픔이 될 수도 있지만 하느님과 함께한 결정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는 굳은 신뢰심으로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 노력합니다. 그러니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두 창녀와 그들의 아들들 (어머니의 사랑 : 1열왕 3,16-28)
이성진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단어와 낱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저마다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조를 합니다. 가령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따스함을, “죽음”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는 차가움과 두려움을, “희망”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는 기다림과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떠한 느낌을 불러일으킬까요? 따스함, 포근함, 편안함 등등 여러 가지 느낌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동안 그 느낌에 푹 젖어 있으면서 어머니와 가졌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머니를 떠올릴 때 이런 느낌과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어머니의 사랑에서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들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독서에 나오는 한 여인의 모습 안에서 이런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독서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창녀이면서 한 집에 사는 두 여인이 갓난아기 한 명을 두고 서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여인은 그 갓난아기가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두 여인은 거의 비슷한 때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여인 중에 한 여인이 밤에 잠을 자다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깔아뭉개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여인은 한밤중에 자신의 죽은 아기를 같은 집에 사는 여인의 산 아기와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다음날 죽은 아기를 발견한 여인은 이 아기가 자신이 낳은 아기가 아님을 즉각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주 여인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결국 두 여인은 솔로몬 왕 앞으로 나오게 되었고 시비를 가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왕은 살아있는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서로 우기는 여인들을 보고는 살아있는 아기를 둘로 쪼개어 반반씩 여인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 명령을 들은 두 여인의 태도를 통해 아기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가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왕의 명령을 들은 두 여인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거짓 어머니는 왕의 결정에 따르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기의 진짜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아기가 죽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죽이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여 아기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기의 진짜 어머니는 아기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왕에게 “임금님, 산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기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1열왕 3,26)라고 청합니다. 이 말을 들은 솔로몬 왕은 이 여인이 아기의 진짜 어머니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자신보다는 아이를 더 생각하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은 얼마 전에 들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이 소녀의 어머니는 온 몸에 심한 화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어머니의 이런 흉한 몰골을 무척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는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친구들 앞에서는 어머니를 모르는 척 하면서 외면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소녀는 자신의 어머니 몸에 있는 화상이 자신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소녀가 아주 어릴 때 집에 불이 났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불이 난 집안에 있는 그 소녀를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 소녀는 어머니에게 그 동안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뉘우쳤고, 그 후로는 자신의 어머니를 떳떳하게 자랑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우리는 쉽사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를 떠올릴 때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마음 안에 따스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크신 사랑!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사랑, 아니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그 크신 사랑을 이미 체험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는 크나큰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낳으시지도 않았고 우리와 인척관계도 없으셨지만 우리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를 풍요롭고,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을 받고 느끼고 잇는 우리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그 사랑 안에 안주하고 있으면 그만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또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사랑 안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통해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는 행동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실천은 우리 모두를 하느님 안에서 더욱 굳건히 결합시키면서 우리를 하느님께로 더욱 가깝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AMEN.
두 창녀와 그들의 아들들 (어머니의 사랑 : 1열왕 3,16-28)
안성남
우리는 종종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가 있습니다. 불 속에 갇힌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안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구한 어머니, 못된 짓만 일삼던 아들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끝까지 아들을 믿고 기다려 주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등.
성서에서도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아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아이의 목숨을 살린 ‘두 창녀와 그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판관기 시대에 솔로몬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솔로몬 왕이 왕궁에 있었는데, 한 아이를 사이에 두고 창녀 두 사람이 와서 이 아이가 서로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하면서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중에 한 여자가 솔로몬 왕에게, “임금님, 이 여자는 저와 한집에 살고 있는데, 며칠 전 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여자도 제가 아이를 낳은 지 3일만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 여자는 자다가, 자기 아이를 깔아뭉개 죽였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는 죽은 자기 아이를 들고 제가 잠자는 사이에 몰래 와서 제 아이와 바꿔놓았습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글쎄 아이가 죽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깜짝 놀라 아이를 자세히 보니, 그 아이는 저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여자가, “아닙니다. 저 여자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자기 아이를 자기가 죽여 놓고 저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저의 아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에 말한 여자가, “아닙니다, 임금님. 저 여자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살아 있는 아이가 저의 아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두 여자는 솔로몬 왕 앞에서 살아 있는 아이가 서로의 아이라고 옥신각신하면서 말싸움을 벌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두 여인의 말을 모두 듣고 나서 조용히 하라고 한 다음, 잠시 후에 “죽은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고, 산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서로들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판결을 내려주겠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은 신하를 시켜 칼을 가져오게 한 후 “이 아이를 둘로 자르고, 이 여자들에게 각각 한쪽씩 나누어주어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왕의 말을 들은 진짜 엄마는 그렇게 되면 자기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진짜 엄마는 솔로몬 왕에게, “임금님, 제가 아이를 가지지 못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차라리 이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면서 슬피 울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한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아니니 임금님 말대로 하면 되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나서, “임금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 때 솔로몬 왕은 “그 아이를 칼로 치지 말아라”라고 말을 한 후, “이 아이를 진짜 엄마에게 주겠다. 이 아이의 진짜 엄마는 이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말한 여자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의 진짜 엄마는 무사히 아이를 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거짓말로 아이를 뺏으려고 한 여자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혜롭게 판결을 내린 솔로몬 왕의 훌륭한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을 보면 선천성 사지절단, 쉽게 말해서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아’를 낳은 어머니가 그 아이를 처음으로 보고 나서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라고 하면서 아이를 품에 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한다면 어떻게 팔과 다리가 없는 아이가 귀여워 보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그 아이가 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아라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아파서 낳은 아이이기에 자신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자기의 아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자기 아이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 아이가 잘 났건 못 났건 간에, 자신의 아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처럼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