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라 (국가적인 영웅 : 판관 4,1-23)
김옥주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제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음식점이나 장사를 하시는 분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만 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살림을 하시는 가정주부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정 주부의 시장 바구니를 통해서 그 나라 경제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어려움들이 많으시리라 믿습니다. 요즘 우리의 경제 문제는 한 가정의 문제를 떠나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좋은 국가정책도 필요하겠지만 경제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는 한 가정의 내무장관이며 살림을 책임지시는 어머니들의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 한나라의 흥망성쇠에 여성이 큰 역할을 해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 가정의 평화가 그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힘으로 지켜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 또한 많은 열심한 여성들에 의해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는 평일미사나 주일미사에 참석한 남녀 신자의 수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과 같은 레지오 활동이나 다른 활동단체에서의 사랑의 실천, 봉사활동이 세상 안에서 교회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풍요롭게 함을 보게 됩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자신들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기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숨은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위대한 여성운동가, 신학자에 의해 교회의 모습이 세상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한 내조를 아끼지 않는 여러분의 숨은 노력과 사랑이 교회의 모습을 세상 안에서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의 판관기를 읽다보면 드보라라는 여성 판관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인 가나안의 왕 야빈의 공격을 받아 나라의 안보가 위협을 받았을 때, 드보라는 자기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의 뜻을 받들어 지도자의 역할을 맡고 나섰습니다. 야빈의 왕의 군대 지휘관은 시스라였고, 900대나 되는 철거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을 20년 동안이나 심하게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스라의 군대를 대항해서 싸우기를 주저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야훼하느님께 간청을 드렸고 그 응답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아삐돗의 아내 여자 예언자 드보라에게 내렸습니다.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악지대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밑에 자리 잡고 앉아 재판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아주 지혜로운 여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문제들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재판을 받곤 했습니다.
드보라는 어느 날 납달리 케데스라는 곳에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 놓고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명령하였소, ‘너는 납달리 지파와 즈브론 지파에서 만 명을 뽑아 다볼 산으로 이끌고 가라. 그러면 나는 야빈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를 키손 강으로 유인해 내겠다. 내가 그의 전군을 병거대까지 유인해 내다가 네 손에 붙이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한때 강대국 가나안의 포로였기 때문에 그들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드보라에게 “만일 당신이 저와 함께 가신다면 가겠지만, 함께 가시지 않는다면 못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드보라는 “내가 꼭 함께 가겠소. 하지만 이번 길에서 그대에게 영광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알아두시오. 야훼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오.”하고 바락과 함께 케데스로 갔습니다.
그리고 드보라는 바락을 격려하여 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드보라는 두려워하는 바락과 함께 전쟁터라 나갔고, 매사에 그를 격려하여 힘을 돋우어 주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야훼께서는 시스라가 거느린 그의 전 병거대와 군대를 바락 앞에서 혼란에 빠뜨리셨고 도망하는 시스라의 잔병들은 바락의 칼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시스라는 우호 관계에 있던 켄 사람 헤벨의 집으로 숨어 갔지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아내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드보라와 바락을 통하여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가나안 왕 야빈의 기세를 꺾으셨으며, 그후로 가나안 왕 야빈은 점점 심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눌리어 마침내 망하고 맙니다. 이 전투에서 드보라는 움츠려 있던 바락을 격려하고 그와 함께 전쟁터에 나감으로써 이스라엘을 강대국의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신체적인 조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물리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경제적, 교육적 도움이 필요한 젊은이들과 함께 살 때 몇 명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어머니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이유로 자신들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자신들과 어머니들 학대한 아버지의 잘못을 용서 할 수 있어도 그러한 아버지의 학대 아래서 어려움을 같이 하던, 지켜주시던 어머니가 끝까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집을 나간 것에 대한 것은 쉽게 용서할 수 없으며 그런 어머니와 같은 여자를 만나게 될까봐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공부를 가르쳐주시던 어머니 봉사들의 도움으로 어머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되찾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어려움에 함께 하지 않으신 어머니에 대한 아쉬운 감정은 쉽게 자신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여성들은 사회적인 활동 범위도 넓어졌고 사회와 가정 안에서 그 위치와 중요성도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여성의 역할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물리적인 힘으로의 공헌보다는 있음 그 자체로 공동체에 힘을 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의 탄생 순간부터 십자가의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늘 예수님과 함께 하셨으며 지금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시며 우리들 곁에서 힘을 주시고 도와주고 계십니다.
성모님께 자신을 맡겨드립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남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자세를 가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속한 본당, 지역사회, 가정 공동체 안에서 기쁨과 평화, 희망을 주는 협조자, 격려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성모님의 생애를 깊이 묵상하고 드보라가 야훼 하느님께 믿음을 두었듯이 부족한 부분들은 주님께서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을 두고 살아갑시다. 우리 여기 보인 한사람 한사람이 이러한 노력을 할 때 우리 가정, 우리본당, 내가 속한 지역사회는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며 하느님 모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드보라 (국가적인 영웅 : 판관기 4-5장)
김효준
‘여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용어들이 떠오르십니까? 부드러움, 나약함, 포근함, 아름다움 ··· 대개 이런 단어들인 것 같습니다. 이 단어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우리들에게 강인하고 굳센 이미지보다는 나약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여자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일까요? 그래서 남자들의 도움과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까요? 물론 우리는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도 남자들 못지 않게 강인하고 굳센 정신을 갖고 있으며, 위기에 처했을 때 남자들보다 더욱 뛰어난 용기를 보여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런 위대한 여성에 대한 것입니다. 특별히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하여, 전쟁터로 향하여 승리를 거두고, 국가적인 영웅이 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바로 드보라입니다. 판관이며 예언자였던 드보라는, 그녀의 생애와 업적을 통해 볼 때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영웅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수 백년 전에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드보라에 관한 이야기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 국가를 창의성과 주도권과 용기를 가지고 구해내는, 감동적인 이야기의 좋은 예가 됩니다.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강대국인 가나안의 왕 야빈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야빈 왕의 군대 지휘관은 철병거를 900대나 가지고 있었던 시스라라는 인물로, 이스라엘을 20년 동안이나 심하게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스라의 군대를 대항해서 싸우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지도자들은 하느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고, 그 응답은 이제 드보라에게 내리게 됩니다.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악 지대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밑에 자리잡고 앉아 재판을 하곤 했습니다. 지혜로운 여인으로 평판이 나 있던 그녀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들을 가지고 와서 재판을 받곤 했던 것입니다.
드보라는 바락이라는 사람을 불러 시스라의 군대에 대적하기 위한 의견을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바락은 한때 가나안의 포로로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격려하여 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이제 떠나시오. 이스라엘의 야훼, 하느님께서 명령하시오”라고 드보라는 바락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자신은 못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듣고 드보라는 대답합니다. “내가 꼭 함께 가겠소. 하지만 이번 길에서 그대에게 영광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알아두시고. 야훼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오”
드보라는 결국 바락과 함께 전쟁터로 나갔고, 두려워하는 바락을 격려하여 힘을 돋우어 주었습니다. 날씨와, 물이 불은 키손 강 덕택으로 드보라와 바락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쳐들어가 가나안을 정복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 대한 평가는 이스라엘의 오래된 민족적 서사시 중의 하나인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로 절정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감격적인 승리의 노래에서 드보라는 자랑스럽게 “나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찬양을 드리리라”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끝에는 드보라와 비교되는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시스라의 어머니였습니다. 시스라는 예훗이라는 여인에 의해 살해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시스라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창가에 앉아 안타깝게 기다립니다. 그래서 창가에서 밖을 기웃거리며 묻습니다. “왜 그의 병거가 이렇게 늦느냐? 천리마가 왜 이처럼 더디냐?“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그토록 기다렸던 데에는 매우 탐욕스런 그녀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전리품 중에서 수놓은 목도리를 선물로 가져다주리라고 굳게 믿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전리품을 탐내는 탐욕스러운 시스라의 어머니와, 자랑스러운 승리의 노래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 너무나 대조되는 여성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수세기를 통해서 사회 참여를 했던 여인들은 이스라엘의 여선지자요 판관이었던 드보라와 견주어져 왔습니다. 오늘날의 여인들에게도 이 드보라 이야기의 교훈은 계속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탐욕스러운 시스라의 어머니의 마음과,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자기를 희생하는 드보라의 마음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연약한 여자니까 그런 것들은 남자들이 해줘야 해!’, ‘그런 것들을 왜 여자인 내가 해야하지?’라는 생각들은, 탐욕스럽게 자신의 외모만을 치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시스라의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드보라의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성(性)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올바로 인식하고, 거기에 뛰어드는 용기가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드보라의 노래는 아직도 우리에게 메아리쳐 들려 오는 듯 합니다. “전진하라, 내 영혼이여, 전능하신 야훼가 함께 하시리.”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또 자신의 온 몸을 던져 자신을 조국을 구했던 드보라의 교훈 속에서,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 받는 여인이 되기 위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드보라 (국가적 영웅)
안 향
세상은 점점 물질 만능주의와 쾌락주의로 물들어가고 있으며,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보다 다른 피조물들의 가치가 더욱 크게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로써 세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을 잊어가며 오히려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한낱 피조물을 우상을 섬기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특히 조심해야할 문제이다. 우리는 그 우상들과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며 오직 하느님만을 찬양하고 찬미해야 하지 않을까?
모세는 하느님의 명을 받고 에집트에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였다. 하지만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채 죽고 나자 그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다. 여호수아 생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줄곧 야훼 하느님을 섬겼다.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도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해 주신 큰 일을 목격한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줄곧 야훼를 섬겼다.
그러나 야훼를 모르는 새 세대,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모르는 새 세대는 바알들을 섬겨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못할 짓들을 하였다. 그들은 야훼 하느님께 노여움을 샀으며, 야훼께서는 크게 화를 내시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적에게 침략 받아 노략질 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심한 곤경에 빠지면, 야훼께서는 판관들을 일으키시어 약탈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곤 하였다.
이스라엘이 강대국인 가나안의 왕 야빈의 공격을 받아 나라의 안보가 위협을 받았을 당시에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에 내버려두시지 않으셨다.
라삐돗의 아내이며 여예언자였던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악 지대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밑에 자리잡고 앉아 재판을 하곤 했다. 그는 매우 지혜로운 여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와서 그에게 재판을 받곤 했다.
가나안의 왕 야빈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하게 억압하자,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께 울부짖었다. 그리하여 야훼께서는 드보라를 일으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명령하셨다. “너는 납달리 지파와 즈불룬 지파에서 만 명을 뽑아 다볼산으로 이끌고 가거라. 그러면 나는 야빈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를 키손강으로 유인해 내겠다. 내가 그의 전군을 병거대까지 유인해 내다가 네 손에 붙이리라.” 하지만 바락은 한때 강대국 가나안의 포로로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야만 싸우러 나가겠다고 말했다. 결국은 드보라가 그를 격려하여 함께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한편 바락이 다볼산에 올라갔다는 것을 전해들은 시스라는 구백 대나 되는 철병거까지 합친 전 군대를 키손강으로 출동시켰다. 드보라는 바락을 격려하며 말했다. “행동을 개시하시오. 이 날은 야훼께서 시스라를 그대 손에 붙이시는 날이오. 정녕 야훼께서 그대 앞에 서서 전진하실 것이오.” 그리하여 바락은 시스라의 군대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야훼께서 시스라가 거느린 그의 전 병거대와 군대를 바락 앞에서 혼란에 빠뜨리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그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가나안 왕 야빈의 기세를 꺾으셨다.
이 전쟁에 대한 평가는 이스라엘의 오래된 민족적 서사시 중의 하나인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로 절정을 이룬다. 이 감격적인 승리의 노래에서 드보라와 바락은 “나는 야훼를 노래하리라.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영광을 돌리리라.”하며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결코 자신의 것으로 돌리지 않고 먼저 야훼 하느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의 끝 부분에 가서 패자의 탐욕스러운 어머니에 대한 노래가 나온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빼앗은 전리품 중에서 수놓은 목도리를 선물로 가져다주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들 시스라가 돌아오기를 창가에 앉아 안타깝게 기다리는 어머니였지만, 그때는 이미 시스라가 야엘이라는 여인에 의해 살해된 후였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아들의 안부와 함께 전리품을 탐내는 시스라의 어머니와 자랑스러운 승리의 노래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드보라 사이의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피의 전쟁을 할 상황은 없지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우상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야 한다. 특별히 욕심, 탐욕과의 싸워야 할 것이다.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다는 말도 있듯이 인간의 욕심은 무한해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들을 섬겨 하느님 야훼의 노여움을 샀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무수한 바알들의 유혹이 있다. 예를 들어 부(富), 명예, 쾌락 등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상들이 많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며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만든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모습들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노여워하실 만한 모습임을 깨닫고 하루빨리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드보라가 하느님께 충실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그분만을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도 드보라처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하는 현시대의 바알들을 물리쳐야만 한다. 그래서 오직 하느님만을 따르며 그분께만 찬미, 찬양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