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이야기
김용철
어느 마을에 “나무와 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서 커다란 <고목 나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목 나무는 우리가 일을 하다가 쉴 때 그늘도 만들어 주고, 또 비가 오거나 홍수가 날 때도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고마운 나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쪽에서 다른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고목 나무는 감미로운 향기를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나비와 벌을 유혹하는 재주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마을을 가꾸고, 좋은 향기를 주는 <장미꽃>이야 말로 최고로 인간에게 소중한 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젊은이의 말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고목은 그늘도, 비바람도 막아주고, 장미는 향기와 아름다움을 주지만 맛있는 열매를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먹을 수 있는 과일 나무인 <포도나무>도 인간에게 소중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말에도 동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고목 나무>, <장미꽃> 그리고 <포도나무>의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 나지막이 고개 숙인 <잡초>가 있었습니다. 잡초는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를 듣고 왠지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이 말한 그런 소중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이듬해 봄이 되자, 새 생명이 피어납니다. 잡초는 초라해진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작은 홀씨 하나를 낳았습니다. 홀씨는 봄바람을 타고, 도시로 날아갔습니다. 잡초의 홀씨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된 도시에서 어느 집 담벼락 위에 떨어졌습니다. 담벼락 위에는 아주 적은 흙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잡초는 그곳에 또 다른 생명을 낳았습니다.
그 집에는 병으로 인해 평생 누워서 살아온 작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담벼락 위에서도 생을 살아가는 잡초를 보고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잡초처럼 쓸모가 없는 존재로 알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보존하는 잡초를 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든 모든 것은 소중한 것입니다. 또한 어느 것 하나 하느님의 섭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쓰여집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으로 정착하는데 하느님의 도구로 쓰인 인물은 남들이 말하는 “더러운 여인,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여인”으로 일컬어지는 <창녀 라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리고 성을 정복하기 위해 정탐하러 온 갈렙과 살몬을 숨겨주는 역할을 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단단한 예리고 성을 정복하도록 도와준 라합은 이후 이스라엘에 귀화하여 다윗의 할아버지인 보아스를 낳게 됨으로써 결국 다윗 가문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으로 들어오는 영광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오묘합니다. 결국 쓸모 없는 <잡초>가 병으로 앓고 있던 소녀에게 힘이 되듯이 창녀로서 버림받은 라합도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모두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은 어떻게 작용할 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라합 (예리고 성을 무너뜨린 창녀 라합)
오신석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 에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간의 모진 광야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탈환하는 역사의 서장에서는 하느님은 창녀였던 여자 라합을 그 도구로 쓰십니다.
하느님께서 라합을 성령으로 채우셔서 라합으로 하여금 예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갈렙과 살몬을 위기에서 구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라합은 드디어 살몬의 아내가 되었으며,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할머니가 됩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영광되이 그 이름이 기록된(마태 1,5) 창녀였던 여자, 하느님의 종 야고보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형제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믿음과 행동이 일치했던 사람으로 아브라함과 동등하게 나란히 칭찬하여 마지않았던 사람(야고 2,25) 창녀 라합, 그가 살몬의 아내요 보아스의 어머니며 이새의 할머니가 되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내력은 이러합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운 사람이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정탐원 두 사람을 밀파하여 예리고 지역을 살피고 오라 일렀습니다. 두 정탐원은 예리고에 잠입하여 창녀 라합의 집에 은신하였습니다. 예리고의 왕이 병사를 보내어 두 정탐원을 잡아오라 하였는데, 이미 두 사람을 이스라엘의 정탐원으로 추측한 라합은, 자발적으로 두 사람을 감추어 주고 이미 떠났다고 속여서 위기에서 구해 줍니다.
라합이 정탐원에게 말합니다. “나는 야훼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야훼께서 홍해바다의 물을 말리시어 당신들을 에집트에서 나오게 하신 이야기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당신들 소식을 듣고 우리는 모두 넋을 잃었습니다. 당신들의 하느님 야훼야말로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을 내신 하느님입니다. 내가 당신들을 잘 봐 드렸으니 당신들도 내 가문 사람들을 잘 봐주겠다고 이제 야훼를 두고 맹세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확실한 표를 주십시오” (여호 2,9-13).
이에 정탐원이 대답하였습니다. “여기 분홍줄이 있으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우리를 내려 준 창문에다 이것을 달아 표시를 하여라. 부모와 오빠들과 일가친척들을 다 네 집에 모여 있게 하여라” (여호 2,18).
라합의 집은 성벽에 붙어 있어 창이 성밖으로 향했으므로 성문이 닫힌 후 라합은 두 정탐원을 창으로 내려 도망치게 했습니다. 무사히 돌아온 정탐원들로부터 그곳의 사정을 전해들은 여호수아는 즉시 백성을 이끌고 진군하였습니다. 라합과 그의 가족은 갈렙과 살몬 두 정탐군을 도망시킨 창문에 그들이 주고 간 분홍줄을 메어 달고 인내로이 하느님의 도우심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여호수아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일곱 수양 뿔나팔을 가진 일곱 사제가 야훼의 궤 앞에서 행진하며 나팔을 불면 정예부대가 그들 앞에 서서 행군하고 후위부대는 야훼의 궤를 따르며 예리고 성을 돌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육 일 동안 계속한 후 이렛날이 되어 새벽동이 트자 그들은 일찍 일어나 전날에 했던 대로 성을 일곱 바퀴 돌았습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외쳤습니다. “고함을 질러라. 야훼께서 너희에게 저 성을 주셨다. 저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야훼께 바쳐 없애 버려라. 다만 창녀 라합의 목숨과 그의 집에 있는 사람만은 살려 두어라. 그 여자는 우리의 사명을 띠고 갔던 사람들을 숨겨주었다” (여호 6,16-17).
온 백성이 여호수아의 명을 받아 ‘와’하고 고함치고 또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예리고의 단단한 성이 불에 타버리는 짚더미처럼 폭삭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오직 라합의 집만이 의연히, 창가에 분홍줄을 드리우고 폐허 속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갈렙과 살몬에게 일렀습니다. “그 창녀의 집에 들어가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딸린 모든 사람을 데려오너라” (여호 6.22). 두 사람이 라합의 집으로 가 라합과 그의 일가친척들을 이스라엘 진영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리고 성(城) 안에서 라합과 그의 가문만을 여호수아가 구해주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보낸 갈렙과 살몬을 위기에서 구해 주고 드디어 예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어준 역사적인 일을 라합이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에 귀하 하여 야훼의 법을 지키며 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살몬의 구혼을 받아 결혼하여 다윗의 할아버지인 보아스를 낳게 됩니다. 라합이 갈렙과 살몬을 살려준 행위는 죽음을 감수하면서도 야훼 하느님께 충실한 종이고자 결심한 사람만이 택할 수 있는, 영웅적이고도 순교적인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이방인 창녀 라합의 가슴 깊이 돋아난 새순 같은 여린 믿음이 예리고 성을 무너뜨려 가나안 복지를 향한 행군의 길을 넓게 열어 주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믿음의 자식들을 찬양하는 가운데 창녀 라합의 믿음을 또한 칭찬하는(히브 11,31)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라합이라는 여인을 통하여 하느님의 도구로 쓰여짐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하느님께서 쓰실 때에는 모두 깊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의 명을 받고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루가 1.38)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