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아내 (창세 19장)
김현규
소돔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해 있던 도시로서 아주 심하게 타락했던 도시의 본보기였습니다. 그곳에서 롯과 롯의 아내, 그리고 롯의 두 딸이 보고 배운 것은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과 물질에 대한 탐욕이었습니다.
성서에서 볼 때 하느님께서는 소돔의 타락을 보시고 그들을 벌하시기에 앞서 먼저 롯에게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소돔의 멸망과 함께 피신할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에 롯은 자신의 딸들과 약혼한 사람들을 찾아가 함께 피신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롯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웃어 넘겨버렸습니다.
어쩔 수없이 롯은 그의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소돔 땅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천사는 피신 길에 결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롯에게 이릅니다. 그리고 이 분지 안에는 아무 데도 머물지 말고 산으로 피신하라고 이릅니다. 그러나 롯은 재앙이 눈앞에 있는데 저 산으로 도망치다가는 죽고 말 것이라고 말하며 가까이 보이는 도시로 피신하겠다고 천사에게 말을 합니다. 천사는 롯의 그러한 청을 받아들여 줍니다. 그러나 도망치는 중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그만 뒤를 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피난을 간 후 롯은 두 딸을 데리고 굴속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거기서 두 딸은 자신의 자식들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만취시켜 놓고 동침을 하여 자신의 후손을 보았습니다.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비록 몸은 소돔을 떠났으나 마음속은 소돔의 불순명, 술취함과 음란으로 가득 차 있던 롯의 아내와 롯의 두 딸을 볼 수 있습니다. 몸은 비록 소돔을 떠났으나 마음속에는 소돔이 여전히 살아 있었기에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이 이야기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의 여정을 반성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상 생활을 하는 우리의 순례생활에는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유혹을 당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유혹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받지 못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이겨 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셨을 때 그 유혹을 통해 우리가 당할 유혹을 상징적으로 예고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유혹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유혹을 당하는 우리에게 그것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 주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유혹을 당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유혹을 당한다면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악을 쳐 이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유혹을 당하셨다는 사실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그분이 유혹을 이기셨음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라는 구체적인 체험을 돌이켜 보지 않고 또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다보지 않고 그저 눈앞에 펼쳐진 현재만을 바라다본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고통뿐일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과거가 기억되고 그리고 미래가 기다려질 때에 거기에서 삶을 위한 힘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은 부활을 바라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것처럼 고난과 유혹이 수반되는 길이지만 예수님처럼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 머물러 있을 때 모든 유혹을 넘어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많은 악의 유혹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확신있는 신앙으로 그 유혹을 이겨낼 때도 있지만 미지근한 신앙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옛날 음행과 무질서가 판치던 시대에 세상사람들로부터 온갖 유혹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홀로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노아는 분명 숱한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는 신앙의 귀감으로 드러납니다. 롯의 아내와 그의 딸처럼 하느님을 외면하고 세상 것에 들떠 생활하다가 멸망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노아처럼 지금은 외롭고 힘들지라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을 선택한 삶을 살 것인지를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각성시켜 주고 있습니다.
맑은 물에 대한 바램의 소리가 한층 높아져 갑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심과 좀 더 편해지고자 하는 욕심들로 오염된 우리의 현실입니다. 크고 작은 유혹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한번 두 번 수긍하다보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땅으로 변할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그는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었기 때문에 편안함과 이기심의 유혹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롯의 아내 (소금기둥이 된 여인)
김남성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인들 가운데 하느님을 경외하면서 우리나라의 신사임당과 같이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도 있었던 반면 그렇지 못했던 여인들도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롯의 아내 역시 후자에 속했던 여인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녀의 성격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옛 소돔 땅에 가보면 아라비아 여인의 형상을 한 소금기둥이 있는데 이것이 그녀가 어떠한 여인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됩니다.
성서는 이 여인의 형상이 바로 롯의 아내가 야훼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소금기둥이 되었다고 전해줍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왜 어떠한 불순종으로 소금기둥이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아브라함이 고향 하란 땅을 떠날 때 같이 동행하였습니다(창세 12, 4).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동행하면서 아브라함을 통해 야훼가 어떤 분이신 지 알 수 있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롯이 의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야훼의 축복으로 많은 가축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제한된 목초지에 비해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너무나 많은 가축을 거느리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잦게 되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땅을 나누어 줄 것을 결심하고 헤브론 고원지대에 올라가서 롯에게 원하는 땅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이에 롯은 기름진 땅이었던 소돔과 고모라가 위치한 요르단 분지를 선택합니다.
이러한 롯의 모습은 의인으로서 교육받아온 모습과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평생동안 아브라함으로부터 의인으로서의 교육과 아울러 경제적 은혜까지 받아온 롯이 단지 자신의 가축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땅 선택에 있어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쾌락의 땅 소돔을 향해 걸어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를 보면서 롯 자신보다는 롯의 아내가 롯을 충동질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의인으로서 살아가는 삶보다 호화, 사치, 물질적 풍요, 쾌락이 제공되는 삶이 더 좋아 보였던 것이죠. 어쨌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롯의 가족들은 아브라함을 떠나 퇴폐와 향락이 만연되어 있는 소돔으로 향합니다.
롯의 가족이 도착한 소돔은 물질적으로는 매우 풍요로웠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윤리적 타락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 타락이 극에 달하자 야훼께서는 소돔을 멸망시킬 것을 결심하시고 파괴의 천사들을 소돔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의인인 롯만은 살리시려고 천사들을 통해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소돔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식구가 이 곳에 또 있느냐? 아들 딸 말고도 이 성에 다른 식구가 있거든 다 데리고 떠나거라. 이 백성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야훼께 사무쳐 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야훼의 보내심을 받아 이 곳을 멸하러 왔다.”(창세 19, 12-13)
이렇게 야훼께서는 의인인 롯은 물론 그의 가족들까지 구원해주시려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아내와 딸은 물론 사위가 될 사람들에게 소돔을 피하라고 전해주었으나 그들은 롯에게 “실없는 소리를 한다”고 하면서 롯의 말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천사들은 롯이 소돔을 떠나기 전에 살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을 롯에게 알려줍니다.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창세 19, 17) 마침내 롯의 가족들이 소돔을 떠나자 징벌이 내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유황불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 모든 것이 불태워 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하는 천사의 말을 무시한 채 그만 뒤를 돌아보다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의 마음에는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화려했고 웅장했던 소돔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의심했고, 그 안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소돔에 남겨둔 집과 재물이 걱정되었습니다. 그 동안 소돔이 주었던 쾌락의 삶도 그리웠습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 것은 다시 소돔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소금기둥이 되는 엄청난 징벌이었고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사의 인도를 받아 구원의 길로 초대되었지만 그녀는 그 길의 입구에서 의심에 찬 마음과 과거의 물욕에 대한 미련으로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이죠.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아라.”(루가 17, 32)라는 짧은 말씀으로 롯의 아내가 준 교훈을 되새겨 주십니다. 그녀는 구원의 길을 걸어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분명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 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루가 9, 6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삶은 마음의 결단으로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만약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에 신경을 쓰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매우 힘들게 됩니다. 세상의 것은 하느님 나라보다 감각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세상 것에 마음이 가면 자꾸 뒤를 돌아다보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그렇게 되다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주저하게 됩니다. 이렇게 주저하다보면 결국 뒤를 돌아다보게 되고 세상의 달콤함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은 매우 쉽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든다는 것은 바로 멸망의 유황이 떨어지고 있는 소돔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과 같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탑을 쌓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소금기둥으로 서 있는 롯의 아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길은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의 길이라는 것,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까지 누려왔던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세상에서 죽는 것이라고…. 지금 여러분들은 누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혹 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죽음으로 이끄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어서 빨리 가던 길의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그것이 참되 회개이며 구원에로의 첫걸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창세 19,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