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과 나오미 (홀로 남은 두 과부)
조성호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 백성으로 머물고 그 신앙을 보존 육성하는 데 있어 가정의 중요성은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가정을 기본적인 교회라고 가르치며, 최초의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러한 가정에 있어 고부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관계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홀로 남은 두 과부-룻과 나오미가 나오는 룻기의 시대 배경을 판관시대(BC.1200-1050년경)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언자 사무엘이 판관기, 사무엘서와 함께 룻기를 지었다고 전합니다(탈무드의 ‘바바 바트라’, 14b). 그러나 사실상 룻기를 지은 저자에 대한 자료는 룻기에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룻기는 비록 4장밖에 안 되는 짧은 성서이지만, 괴테(J.W.Von Goethe).가 ‘구약성서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소품’이라고 할 정도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특히 룻기 4장 18-22절의 족보를 제외하고는 이 책의 문학적 통일성은 흠이 없으며, 이야기는 완전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전개됩니다.
이렇게 형식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작품성을 띠는 룻기는 내용 면에서도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여성끼리 나누는 우애의 아름다움, 모범적 인물 제시, 가족 유대의 중요성, 이방인 개종자에 대한 배려, 율법과 관습 준수의 강조, 다윗과 그의 왕조에 대한 합법화, 사람을 돌보는 하느님에 대한 증언 등 여러 내용들을 폭넓게 내포하고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정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사건마다 섬세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맺어주는 가족 관계에 충실할 때 하느님께서는 함께 하시며 돌보아 주시고 당신께서 맺으신 계약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를 통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살 길을 열어주는 생명의 주인이고, 서로에게 충실한 삶 속에서 항상 머무르며 일하고 축복하여 주는 (1,8; 2,20; 3,10; 4,14)분이며,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하려는”(2,12)사람이면 누구든 돌보아 주는 분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룻의 모습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라’(4계명)는 계명 준수의 외적 모습을 뛰어넘어 그 내면의 깊은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겠으며,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겠습니다.”(룻기1,16) “죽음밖에는 아무도 저를 어머님에게서 떼어내지 못합니다”(룻기1,17).
이 모습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인색한 태도로 마지못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애정으로 나오미를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며느리는 문서 없는 종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즉 며느리는 종처럼 고된 시집살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속담에는 “며느리는 악마를 집에 들인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며느리는 가정불화의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룻은 시어머니와의 삶을 종처럼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사랑함으로써 가정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룻은 언제나 나오미 곁에 있어, 나오미가 머무는 곳에 그도 머물고, 나오미의 겨레를 자기 겨레로 삼고, 나오미의 하느님을 자기의 하느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자기 시어머니를 그렇게도 헌신적으로 사랑한 룻과 그 사랑을 사랑으로 갚은 나오미의 이야기는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로 감격적인 문학중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를 통해 가정의 화목은 서로를 자기 목숨처럼 아끼며 사랑하는 가운데 함께 머무는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룻의 경우에서처럼 율법의 고결한 정신은 외적인 충실성만이 아니라 외적인 사랑에서 실현되며, 그것은 혈통과는 관계없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룻과 나오미의 사랑에서 인간적인 사랑의 결실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役事)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룻과 나오미
이동욱
룻기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문서 가운데 하나다. 히브리 성서에서 이 책은 5대 절기의 하나로 식민지 시대 공동체 재건기의 축제인 칠칠절(오순절; 밀 추수를 기리는 축제)에 낭독되었으며, 아마도 이는 이 텍스트의 대중적 인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이 텍스트의 내용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한 스토리와 구성을 담고 있다. 특히 위기와 그 극복 면에서 적절한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그 줄거리 면에서 시종일관 대중의 공감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룻기는 아마도 다윗 조상과 연관된 실제 역사서라기보다는 당시에 떠돌던 일종의 민담에 가깝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운명을 함축시킨 상징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룻은 히브리어로 “동료, 친구”를, 나오미는 “즐거움, 나의 즐거움”을 뜻한다. 룻기의 저자는 백성들 사이에 떠돌던 교훈적 이야기를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으며, 거기에 담겨진 교훈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의 종교를 따르겠다는 효성심과 룻에 대한 나오미의 신실한 사랑의 태도이다. 두 여인은 서로 국적이 다르면서도, 유다와 모압이라는 적대 관계를 초월한 유대감과 연대성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당대는, 여성이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 의무가 있던 시대이다. 그래서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에서는 이를 위해 “시형제 결혼 제도”가 있었고, 이것마저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는 “고엘 제도”에 의지해야 했다. “시형제 결혼 제도”란 한 남자가 결혼을 해서 살다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 아내는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죽은 남편의 대를 잇는 제도였다.
이 제도는 죽은 남편의 대를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이고 또한 과부가 된 여인들을 사회 경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생긴 제도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기에, 이 제도는 남성 중심의 사회제도를 반영하여 적지 않은 이질감을 느끼게 하나, 당시의 상황에서는 절박한 가문 계승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의 경우에는 두 아들 모두 자식 없이 죽게 되자 이 제도를 통해서도 대를 이을 가능성 마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가리켜 “살맛이 없는” 신세요, “야훼께 얻어맞은” 신세라고 한탄했던 것이다.
한편, 경제적 능력도 없고 힘도 없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자생했던 제도가 바로 “고엘 제도”(레위 25,47-55; 예레 32,6-15)인 것이다. 이 제도는 한 가족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즉 경제적 파탄으로 조상의 거처인 땅을 팔아야 되거나 자신을 종으로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 가까운 친척이 나서서 이들의 채무를 갚아 주던 제도인 것이다. 단지 결혼에 국한되었던 제도는 아니나, 한 집안의 재산이나 운명을 일가 친척이 모두 공동으로 책임져서 한 씨족의 재산이 다른 씨족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또한 대를 잇기 위한 제도였다. 여기에는 당시의 생존을 위한 고투가 담겨있고 어렵고 험난한 자신의 운명과의 투쟁이 담겨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나서고 또한 시어머니의 나라와 종교를 따르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상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룻은 동서인 오르바처럼 당시의 사람들 눈에 쉬운 해결책, 곧 다시 자신의 모압 사회로 되돌아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과감하게 결정한다.
다시 말해 룻은 나오미에 대한 의리와 효성을 통해 하느님을 자신의 하느님으로 섬기기로 결단 내린다.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익히 헤아려 새 길을 마련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를 따라간다.
이런 애절하고 비장한 룻의 마음은 다음의 대목에서 잘 표현된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겠으며,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이 눈감으시는 곳에서 저도 눈을 감고 어머님 곁에 같이 묻히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안 됩니다. 죽음밖에는 아무도 저를 어머님에게서 떼어 내지 못합니다”(룻 1,16-17).
이런 룻의 갸륵한 마음을 보아즈라는 같은 씨족의 사람이 헤아려 본다. 이름 그대로 보아즈는 “기운 찬, 생기 있는” 이로서 룻에게 온갖 친절을 베풀어준다. 그러면서 그는 룻기의 핵심 주제를 담은 말을 한다. “네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날개 아래로 안식처를 찾아왔으니, 너에게 넉넉하게 갚아 주실 것이다”(룻 2,12).
세속적인 판단으로 볼 때 룻의 행동은 바보스럽고 무모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룻의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통하여, 또한 그녀의 효성을 통하여, 저자는 야훼의 날개 밑에서 신실함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보상하시는 야훼 하느님의 자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곧, 룻과 나오미는 그들 사이에 자기 결단과 행동으로 인하여, 더 나아가 이들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는 야훼의 신실하심 아래 축복을 얻고 좋은 열매를 삶에서 거두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실의 삶 속에서 주옥처럼 빛나는 룻의 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