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의 마리아 (행동하는 사랑 마태 26, 6-13)

 

베다니의 마리아 (행동하는 사랑 마태 26, 6-13)


                                                                     남덕희






베다니아에 사는 마리아는 예수님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자신의 고통과 번뇌를 드러내 보이신 듯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누구이고 그분의 능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많은 사람에게는 신비롭게 여겨졌지만 마리아는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에게 받아온 사랑을 이제  그분의 마지막 때가 다가오자 그 사랑을 행동으로써 그분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그분에게 받은 사랑을 행동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과월절이 되기 엿새 전에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위해 상당한 액수의  기름을 예수님께 발라드립니다. 이 행동은 유다가 지적하듯이 무모하고 어이없는 낭비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물질적인 가치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그분의 마음을 달래고  싶은 정성어린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예수님이 그녀에게 베푸신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의 그 행동은 물질적인 것을 뛰어넘어 이미 그분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다시 말해 마리아의 행위는 그것이 대단한 낭비였음에도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사랑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는 가슴아픈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마리아의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사실 그분은 오래지 않아 수난과 죽음으로 차디찬 무덤에 눕혀질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이러한 폭행은 그분이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에 대한 철저한 배반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수난 전에 마리아는 예수님께 행동으로 자신의 온 마음을 그분에게 드림으로써 그 철저한  배반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행동은 사소하게 보이질 모르나 결국 부활이후의 신앙인들에게는 사랑의 승리를 예고한 하나의 징표였던 것입니다.




평범한 집의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이 겸손의 행동은 위기의  때를 맞으신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감격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사소한  행동은 크나큰 사랑의 징표로 후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며 마리아의 사랑의  행위는 수난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과  같이 오늘날 위기와 유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어두움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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