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다섯 자매 (여자의 상속권)
원영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구태의연한 속담은 이젠 책장 속으로 집어넣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암탉이 울어야 사람들이 깨어나고 모든 일들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로 수정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 나라로서는 개화기 전까지가 그랬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여성을 하나의 재산의 대상으로써 간주한 적도 있었으니 상당히 性에 대한 편견과 불균형이 심할 때가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다.
이 같은 여성들의 잘못된 선입견에 대해서 의연히 자신의 권리를 나타낸 여성들이 구약 시대에도 보여지고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슬롭핫의 다섯 딸들이었다. 그녀들은 “우리 아버지는 아들을 남기지 못하시고 광야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다고 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문중에서 사라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아버지의 근친들이 그 땅을 차지할 때에 저희에게도 얼마쯤 나누어주십시오”라고 슬롭핫의 다섯 딸들은 아버지 사망 후에 모세에게 말했다.
모세가 그들의 요구를 야훼께 아뢰니,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의 유산을 딸에게 상속시켜라. 딸마저 없으면 그의 유산을 친형제들에게 상속시켜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율법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민법에 기록된 법령이 되었다. 이 다섯 자매들이 요셉의 아들 므나쎄의 아들들과 결혼한 후에도 그들의 재산은 아버지 문중에 속하는 친족들에게 남겨 주었다.
한 특정한 여인들의 재산권을 공개된 법정에서 획득한 제일 첫 번째 기록이 이 사건이다. 이 여인들의 아버지는 그의 다섯 딸들에게 모세가 정한 법들에 대한 지식과 그들의 권 리를 위해서 맞서 싸울 수 있는 귀한 정신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나? 첫째로, 그들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가진 신앙적이고도 인권을 존중할 줄 아는 공평한 지도자에게 소송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잘 교육받은 인간답게 재판자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그들이 옳다는 확신을 가졌었고, 항의하는 태도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태도로 모세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의 바르게, 또 신중한 태도로, 그러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써 재판자를 대했다.
모세와 같이 의로운 사람으로서는 그들의 변론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다섯 자매들이 정의를 위해 싸운 일은 그들에게 만 유익했던 것이 아니고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모세에 의해서 제정된, 법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오늘날의 여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다. 모세가 그 백성에게 행한 첫 연설 중에 “재판할 때에 한쪽을 편들면 안된다. 세력이 있 는 자이든 없는 자이든 똑같이 들어주어야 한다. 재판이란 하느님께서 몸소 하시는 일이니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판결하기에 벅찬 사건은 내가 들어줄 터이니 나에게 올려라” (신명기 1:17)라고 했다.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은 여인들을 남자들과 다르게 창조하셨으나, 결코 열등하게 창조하시지는 않았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보다 믿음이 더 우월한 것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새 계약을 주셨는데 그 새 계약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믿음으로 다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똑같은 인간으로 보셨다. 그는 한 性을 다른 성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셨으며, 둘 다 구원과 약속과 신앙과 의로움의 상속자요, 영원한 생명을 대망하는 공동 상속자로 보셨다. 구원의 상속자라 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더불어 화해하고 救贖을 이어받는 여인들과 남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선물을 상속으로 받는 자는 여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과 소망을 이어받을 공동 상속자들이다. 의로움의 상속자가 되는 법적 지위는 여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인들은 정식 종족 보존자들이기 때문이다. 의로움으로 입혀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라. 영적인 것을 상징하는 속옷에 비하면 우리 몸에 걸치는 겉옷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브로우치나, 털옷이나 값비싼 보석보다 영적인 축복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여인들은 얼마나 축복 받은 여인들인가!
돈에 연연하는 여인과, 잠언 31장 10절에서 31절까지에 묘사된,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인과 어느 쪽이 더 존경받을 것인가? 후자는 명예를 탐하지도 않고, 칭찬 받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의 인권이 침해받지 않나 하고 염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많은 것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자녀들이 그를 찬양하고 남편이 칭찬하며, 성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여인으로서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잠언 31장의 여인상과 슬롭핫의 다섯 딸들은 우리나라의 신 사임당과 비교할 수 있는 여인 의 모습으로써 내조를 아끼지 않고, 자식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끊임없이 갖고, 자신이 해야하고 주장해야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현명한 여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