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 제관들과 엘리야의 제사 (마르 1,14-20)

 

바알 제관들과 엘리야의 제사 (마르 1,14-20)


                                                                     이상구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복음”을 두루 전파하셨음을 전하고 있다. 이 기사는– 인간 편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지도– 아울러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복음이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인간편에서– 이것을 믿고 선택하여/ 그 복음대로 살겠다는 결단이 요청된다.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이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또/ 마르코 복음 10, 31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신다.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하여 믿으면– 현세에서는 힘들더라도 엄청난 상급이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인간은 의지가 너무나 나약하고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느님의 복음만을 믿기보다는/ 너무나 쉽게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고/ 세상 것을 추구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하느님과 세상 것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과 바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가르멜 산에서/ 사백 오십 명이나 되는 바알의 예언자들을 상대로/ 야훼께서 어떠한 분인지 똑똑히 보여준다(1열왕 18,20-40). 장작을 쌓아둔 주변 고랑에 물이 가득 고일 정도로 붓게 한 후,/ 야훼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서 그분의 불길로 물을 말리고/ 제물을 불사른 것이다. 이 장면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께서 하느님이십니다”하고 외치며/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죽였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기적을 통해서였지만,/ 하느님을 선택하고 그분께 대한 신앙을 결단한다. “나 외에는 신이 없다”는/ 신명 32,39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충실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하느님과 세상 것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모습은 여전하다.




이스라엘의 한 현자는/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세상 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1,8). “세상 만사 헛되다”(1,11). 바오로 사도도– “세상은 사라져 가고 있다”(1고린 7,31)고 말하면서/ 세상사에 너무 마음을 뺏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헛된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잃는다면,/ 이 얼마나 우둔한 짓이겠는가?




따라서/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며, 그 복음대로 사는 것은– 무엇보다 오직 하느님만을 선택하고 그분만을 따르겠다는 결단과/ 자신의 선택을 구체적인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요청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필요할 때는 하느님을 찾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세속의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면/ 세속인과 신앙인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사도 바오로는 권고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십시오”(필립 1,27).




사실/ 너무나 나약한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결단이 옳은 것인지/ 쉽게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뭔가 구체적인 증거나 기적을 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기적을 보이심으로써 당신을 선택하고 믿게 하셨다.




인간의 나약성은/ 예수님 시대에도 똑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루가 11,29-30)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당신 자신이 “기적의 표”!,/ 즉 믿어도 된다는!,/ 믿어야 한다는! 증거가 되신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필립 3,10).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분에 대한 믿음만을 선택하여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르멜산에서 엘리야의 기적을 보고서 하느님을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에페 4,21-24).


바로/ 세례 때 결심한 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에페5,1)도     록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운 바를/ 삶으로 실천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느님의 복음”에 대한 자신의 선택과 결단을 새롭게 확인하고,/ 다시금 굳게 확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길은 믿음”(1요한 5,4)이라는– 요한 1서의 말씀대로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우둔한 짓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울러 이러한 격려의 말씀도 주신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이 글은 카테고리: logos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