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다사르왕의 악행 (다니 5장)

 

발다사르왕의 악행 (다니 5장)


                                                                     박기석






형제․자매 여러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추억의 한토막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엿을 사라고 구수하게 외치는 엿장수의 목소리와 가위소리를 듣고는 떨어진 신발이나 고장난 가전제품을 찾아 엿과 바꾸어 먹던 일입니다.  엿판에서 뚝 떼어내는 엿을 받아 들고는 덤으로 조금만 더 달라고 떼를 쓰던 어린시절을 우리는 거의 다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이처럼 “덤”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우리들의  조그마한 욕심을 만족시켜 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덤이란 것은  항상 부수적인 것이어서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을 때 은근히 우리들은 그 덤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덤 때문에 더 큰  욕심에 빠지고 나의 본래의 위치와 본래에 주어졌던 것을 모두 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참뜻보다는 덤으로 얻어지는 권력과 치부에 눈이 어두워 진다면 세상은  부정한 사회가 되고 맙니다. 사업을 하는 이들이 성실한 이윤추구 보다는 부정하게  얻어지는 덤이란 폭리만을 원하게 될 때 사기가 범람하는 사회가 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덤의 욕망으로 인한 잘못됨은 무엇일까요?




이 덤의 욕망에 대한 교훈을 구약의 다니엘서 5장을 통해 생각해 봅시다.




바빌론의 왕 발다사르는 한번은 자기 나라 귀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한참 술잔이 돌아가고 있는 도중에 왕은 그의 선친인 나부고도노소르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전리품으로 빼앗아 온 거룩한 그릇들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잔치에 초대된 귀인들과 함께 금, 은, 동, 철, 목석으로 만든 우상을 찬양하면서 그 거룩한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십니다.




사실 이 거룩한 그릇들은 오직 하느님을 위해  쓰이는 것들이었습니다. 즉 하느님께 대한 직접적이고 궁극적인 모독을 감행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하느님 모독이 행해지는 동안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방의 벽에 쓰는  기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왕의 안색은 변하고 공포감에 사로잡힙니다. 이에 왕은 이 글을 해석하기 위하여 현자들을 불러모읍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해석하지 못하자 다니엘을 오게 합니다.




다니엘은 발다사르 왕에게 와서, 왕이 제시하는 해석에 대한 보상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일깨워 줍니다. “당신은 하늘의 하느님을 거역하여 그 성전의 그릇들을 가져오게 하고 당신의 귀인들 및 당신의 여자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때문에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시어 벽에 글을 쓰게 하셨지요. 그 말은 ‘메네, 테켈, 파레스'(즉 세어 보고, 달아 보고, 나누었다)입니다. ‘세어 보았다’함은 하느님께서 이미 당신이 통치할 날 수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신다 함이요, ‘달아 보았다’함은 당신을 저울에 달아  보니 가벼웠다 함이요, ‘나누었다’함은 당신의 나라가 나뉘어 메디아인과 페르샤인들에게 주어진다 함입니다.” 실제로 그 날 밤에 발다사르 왕은 살해되었고, 메디아 사람들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여기서 다니엘은 왕에게 역사의 교훈에 관한 설교를  합니다. 즉 그에 의하면 왕국의 위대성도 만백성 위에 떨치는 그 권위도 다 사실은 모든 지배자와 권위의 참된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축복에 의존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발다사르 왕의 아버지인 나부고도노소르 왕의 손에 왕국을 맡기십니다. 하지만 하느님  당신의 계속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늘 겸손이 필요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발다사르 왕은 이를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겸손에 대한 교훈을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거룩한 그릇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용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왕국과 왕으로서의 권위에 만족하지 않고, 또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참다운 왕으로서의 모범을 잊은 채, 속세적인 욕망에 빠져  하느님까지 넘보려는 잘못된 덤의 욕망은 결국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을 가졌다는 종교인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참뜻과 참다운 화해와 평화 속에서 이웃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참다운 목표보다는 하느님을 저버리고 얻어지는 속세적인 덤만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참된 목표를 정하고 덤만을 얻으려는 우리의 욕망에서 벗어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그것을 향해 끝없는 전진을 가할 때 그 외의 것은 덤으로 얻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덤을 위한 생을 사는 것보다는 나의 참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면 우리의 목표는 성취될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외의 것들은 곁들여 하느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마태 7,33).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겸손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 머물 수 있도록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하느님이 주시는 “덤”의 선물에 필요 조건이랍니다. 우리 모두 겸손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지합시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할 때 우리는 덤으로 살아 갈 수 있음을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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