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의 축복
정석현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가운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즉, 하느님의 뜻이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을 우리들의 생활 안에서 따르고 실천하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구약의 예언자가 있습니다. 그는 민수기 22장에서 24장에 걸쳐서 소개되며,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을 지닌 발람 예언자로,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부돌지방 사람으로서 브올의 아들이고, 당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예언자였습니다.
홍해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 요르단 건너편 모압평야에 진을 쳤습니다. 이에 모압왕 발락은 아모리인들을 섬멸한 이스라엘 군대의 위력에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미디안 장로들과 궁리를 하던 중 예언자 발람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력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것보다 예언자의 기도의 힘을 빌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나머지 취한 종교적 계략인 것입니다.
발락은 사신을 보내어 발람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한 민족이 지금 나의 접경에까지 와서 온 땅을 뒤덮고 있소. 어찌나 많은지 나로서는 당할 수가 없으니, 곧 와서 그 백성을 저주해 주시오. 그대가 복을 빌어 주는 사람은 복을 받고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 줄을 나는 아오. 나의 청을 거절하지 말고 부디 와 주시오. 잘 대우해 드리리다.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대로 해 줄 터이니 부디 와서 이 백성을 저주해 주시오.”
그러나 발람은 쉽게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발람이 야훼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느님께서 “그들을 따라 가지 말아라. 또 그 백성은 복을 받은 백성이니 저주하면 안 된다.” 하고 단단히 이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압의 사신들이 많은 재물을 약속하자 부정한 소득을 좋아하던 발람은(2베드로 2,14) 결국 사신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하느님은 발람이 가는 것을 보시고 몹시 화가 나서 천사를 보내어 그의 길을 가로막고 말씀하습니다. “너는 지금 내 눈에 거슬리는 길을 가고 있다.” 그제야 눈이 열린 발람이 야훼의 천사에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당신 눈에 거슬리는 길이라면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자 야훼의 천사가 발람에게 “이 사람들을 따라 가거라. 그러나 너는 내가 시키는 말만해야 한다” 하고 말하자 발람은 발락이 보낸 사신들을 따라 발길을 옮겼습니다.
드디어 발람은 모압왕 발락의 앞에 당도하였습니다.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크게 고심하고 있던 발락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발락은 이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는 길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일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와 두려운 심판을 깊이 인식한 발람은 자신이 발락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만 예언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내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밖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락의 요청에 따라 세 번씩이나 장소를 옮겼지만, 발람은 모압의 모든 고관들 앞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모압 임금이 나를 동쪽 산골에서 데려 왔겠다. 와서 제 편이 되어 야곱을 저주해 달라고, 와서 제 편이 되어 이스라엘을 욕해 달라고 하였지만, 하느님께서 저주하시지 않는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랴. 야훼께서 욕하시지 않는 자를 내가 어찌 욕하랴.”
발람의 그 같은 결심과 축복이 가지는 의미를 발락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그는 발람의 마음을 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극진하고 융숭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결국 발람은 발락이 제공한 물질에 눈이 어두워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부패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주게 됩니다. 발람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2베드로 2,15). 발람은 이스라엘 자손을 죄짓게 하였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였으며 음란한 짓을 하게 하여(묵시 2, 14)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발람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자신의 이름의 뜻처럼 이스라엘을 파멸시키려 한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발람도 칼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마칩니다.(민수 31, 8; 여호수아 13, 22).
분명히 발람은 다른 예언자 못지 않게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여러 번의 유혹도 잘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마지막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명예와 재물을 탐하는 자신의 욕심을 따름으로써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대한 경외심과 두려워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발락이 제공한 물질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을 범죄에 빠지게 한, 걸려 넘어진 예언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발람과 같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서도 명예와 제물을 좇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가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체적인 인도를 받기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삶의 근본적인 자세입니다. 조지 뮬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6가지 단계를 소개합니다. “첫째,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에 관한 나의 의사가 있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둘째, 결과에 대해서는 나의 감정이나 이상을 개입시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셋째,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방향을 깨달으려고 노력한다. 넷째, 주변 상황을 고려한다. 종종 상황과 말씀과 성령이 서로 연결되어 하느님의 뜻을 밝혀준다. 다섯째,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내게 보여주시기를 간구한다. 여섯째, 앞에 열거한 대로 하느님께로 향한 기도를 통하고, 성서 말씀과 묵상을 통한 뒤에 심사 숙고하여 다다르게 된 결론에 따라 행한다. 이때 내 마음에 평안이 따르면, 두세 번 더 기도한 다음 진행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느님의 종으로서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