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힘 (병상과 무덤가의 여인들)

 

믿음의 힘 (병상과 무덤가의 여인들)


                                                                     이종환






성서를 통해 나타나는 병자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들은 언제나 신앙에 대한 결단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께서는 때로 그들이 있는 곳에 친히 오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다만 멀리서 그들을 보고 계실 뿐입니다. 하지만, 과정이 어떻든 간에, 아픔을 치유 받고 고쳐진 사람과, 그것을 본 사람들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엄청난 느낌들로 가득차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의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셨을 때에(마태 8,14-17; 마르 1,29-34) 장모는 열이 몹시 높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다만 그의 옆에 섰고 그의 손을 가만히 만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열이 없어지고 일어나서 예수를 시중 들었습니다. 루가 복음서에서도 예수께서는 열이 떨어지라는 한 마디 말씀만으로 그녀를 고쳐주고 계심을 전해줍니다(루가 4,38-41).




또, 12년이나 하혈하던 여인을 고쳐주실 때에 예수께서는 “여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마태 9,22)고 선언합니다. 여인은 단지 예수의 옷깃을 만졌을 뿐이었고,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는 믿음 하나로 예수의 능력을 받아 회복되었습니다.




한편, 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아이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셨던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왜 마귀를 쫓아낼 수 없었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을 향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마태 17,20-21)




루가 복음서만이 전해주고 있는 18년 동안 앓던 여인, 즉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고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던 여인도 안식일에 예수께 병을 치유 받습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여인아,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 라고 말씀하시며 손을 얹으셨고, 여인은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루가 13,12-13).




이렇게 여러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죽은 사람을 살리신 대목에서 더욱 놀라운 권능과 힘을 보여주십니다.




딸이 거의 죽게 되어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청했던 회당장 야이로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딸의 죽음을 전해들은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러면 딸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루가 8,50) 그리고는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 통곡하는 사람들과 소란을 부리는 사람들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확고하게 말씀하십니다. “가만두어라.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고 잠자고 있다.” 그리고 그분은 소녀의 손을 잡으시며, 일어나라고 말씀하셨고, 소녀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외아들이 죽어서 매장하러 가고 있던 나인이라는 동네의 과부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장례행렬과 마주치셨던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측은히 여기시어 “울지 마라”하며 위로하셨고(루가 7,13), 상여에 손을 대시며 “젊은이야, 일어나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젊은이는 벌떡 일어나 말을 하기 시작했고, 성서는 이처럼 예수께서 그 젊은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 복음서 11장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그들의 오라비 나자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라자로는 무덤에 묻은 지 나흘이나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3-26)




마르타는 예수께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요한 11,27)


그리고, 예수께서 무덤에 있는 마리아를 만나러 마르타와 함께 갔을 때, 마리아도 그러한 믿음을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루가11,32)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했던 마리아와 마르타가 슬피 울고, 그들의 친구들이 우는 것을 보고 함께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덤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돌을 옮기라고 하셨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이제 저는 여기 둘러 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 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나자로야, 나오너라”고 외치셨습니다. 이제 나자로는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의 손과 발은 천으로 감겨진 채였고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져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덤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요한 11,44)




이 밖에도 성서는 고통과 질병에서 많은 이들을 구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그 모든 예수님의 치유와 선포들은 과학 기술이나 학식의 도움 없이도, 세상의 모든 철학자와 학자들이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빛을 인간에게 비추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병과 고통은, 죄를 지어 그 벌로 받은 것이 아님을 예수께서는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가지고 계신 신념이었습니다. 그 분은 몸을 지배하는 마음의 힘을 알고 계셨고, 그 힘으로부터 자연스레 신앙의 삶을 이끌어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어 있을 때,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으시던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들을 있는 그대로 그 분께 보여드릴 때, 우리는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능력의 모습 또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것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




“믿음의 힘!” ···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그 힘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로의 초대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초대가 바로 우리에게 건네시는 초대임을,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고, 새로운 삶, 더 높은 질서로 이끌어 주시는 길임을, 깊이 깨닫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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