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발의 아내 (초조한 멍에)

 

보디발의 아내 (초조한 멍에)


                                                                     배한상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랑’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10대, 20대,/ 또 결혼을 하고 살아가며/


    ‘나는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고,/ 당신은 나를 사랑해야 한다.’ 라고 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당신을 어느 누구보다 더 사랑해.’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나는 다른 사람한테보다/ 당신에게 더 끌립니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왜 실제로/ 어떤 특정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까?


    왜 저런 유형이 아닌/ 이런 유형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조건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정 유형의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우리를 매료시키는 상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바로 우리가 그 사람을 제대로 본 것이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빗나간 욕망이죠./ 집착입니다. 


    하지만 참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매력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진정으로 어떤 이끌림이나/


    또 나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대상만은 아닙니다.


    또 사랑이란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고,/ 가라앉히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에 빠진다는 건 사랑과 무관합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애착입니다.


    여기에 사랑에 빠져/ 빗나간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누구입니까?


    그 여인은 바로 요셉을 유혹한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파라오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


    하루아침에 노예신세가 되고 만 요셉을 유혹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죠.


    요셉이 수 차례 거절했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요셉의 옷을 붙잡고


    침실로 가자고 꾀었고,


    그러자 요셉은 황급히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녀의 손에 요셉의 옷이 벗겨지고 말았죠.


    그러자 그녀의 사랑은 순간/ 미움과 증오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요셉이 매력적이기를 그치는 순간/


    빗나간 사랑이 끝나고만 것이죠.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연민을 품은 것 자체는 사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구에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새상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집착하기를 요구합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해./ 나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해./


    그리고 나는 당신 안에서 행복을 찾고,/


    또 당신은 내 안에서 당신 행복을 찾아야 해.’ 라는 집착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거기에서 소유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욕망이 있는 곳에 늘 위협이 있고,/ 위협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늘 증오합니다.


    보디발의 아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잃어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욕망과 애착이 아닙니다.


    보디발의 아내처럼 사랑에 빠지는 건 사랑과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랑에 빠지는 것을 도처에서 찬미합니다.


    그건 질병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그 병을 옮기려 애씁니다.


    그런 사랑이 영화에서, 노래에서 나옵니다.


    그건 요구의 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대방과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상대방을 보길 멈춥니다.


    상대방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집착으로 우리들의 욕망을/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요셉의 매력에 빠져 잠자리를 요구했듯이 말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진정 자신 속에 피어올랐을 지도 모를/


    순수한 사랑의 향내를/ 순간에 잃어버린 불행한 여성이었습니다.


    문제는 빗나간 사랑의 소유자 보디발의 아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보디발의 아내처럼/ 빗나간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가만히 여러분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기대에 못 미치게 되면/ 우리는 불안해하고 원망합니다.


    잃어버릴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두려움은 사랑이 아닙니다.




적어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선명하게 본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서로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 없어도,/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 없어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라고 말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상태일지라도,/ 그 상대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상대방이 그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상대방에게 민감하고 정확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옳은 일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옳은 일도, 잘못도,/ 착한 일도, 나쁜 일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현재 이 순간 새롭게 보고,/ 지금의 상대방에게 반응을 보입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을 버린다면,/


    내가 사랑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좀 더 떨어져 있다면/


    진정한 사랑은 피어오를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대로의/ 완전하고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로지 줌으로써, 그리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 사랑,/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우리들의 삶에서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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