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발의 종이 된 요셉 (창세 39장)
서근수
안녕하세요!
여러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모범으로 살고자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들 따르는 삶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노라면 어렵고 힘들고 억울한 상황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너무나 착하고 선하게 살아 우리와 함께 더불어 오래 살기를 원했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병들어 죽게됐을 때, 그 상황은 우리를 힘들고 때로는 절망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그분을 돌아가시게 했느냐고”말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한다는 것조차 회의가 들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은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현세적인 즐거움과 욕구의 성취를 원하시지 않고, 인간의 진정한 구원과 행복을 위해 고통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로 에집트의 보디발이라는 근위대장에게 팔려가 타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느님이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라서 하는 일마다 잘 되어서 보디발의 집사로 큰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의 시기로 팔려갔지만 하느님이 함께 해주져서 유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던중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아름다운 용모와 외모에 반해 유혹을 하게 됩니다. 요셉은 여러번 거절했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계속해서 음란한 말로 요셉을 유혹하며 괴로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자기의 맏은 일을 하러 집으로 들어갔더니, 다른 식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잡으며 유혹하였고, 요셉은 제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내버려 둔 채 피하여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에 보디발의 아내는 화가 치밀어 요셉이 자기를 강간하려 했다고 소리치며 보디발에게 고해바쳤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보디발은 몹시 분노하여 요셉을 감옥에 넣고 죽일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자신의 본마음과 상관없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절망스럽고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향한 요셉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항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이야기를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 요셉의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는 모든 것이 잘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기쁘고 행복할 때가 있고, 또 어는 때는 본의 아니게 닥쳐온 고통의 상황들에서 절망하고 낙심하기도 하기도 하는 저희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신앙한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쁨과 행복은 잘 수용하고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지만 고통과 괴로움은 나에게서 없어지고 사라져 주길 바라고 있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믿고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엄연히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견뎌내셨고, 우리 또한 그러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신앙한다는 것은 부활후의 기쁜 삶만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속에서도 하느님의 우리 안에 함께 계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고 계신다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요셉의 삶은 바로 이러한 신앙의 삶을 살았고, 하느님은 한번도 요셉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러한 삶을 보면서 현실의 삶이 괴롭고 힘든 삶이지만 그 안에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십자가상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들의 현실속에서 받아 들여야 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복음의 삶은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속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삶이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짋어지는 삶입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참다운 부활, 구원을 체험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