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마 속의 세 젊은이 (다니 3장)

 

불가마 속의 세 젊은이 (다니 3장)


                                                                     서근수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세 젊은이을 통해서 어떻게  하느님을 믿고 실천해야 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점령되어 있던 시기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바빌론 왕인 느부갓네살은 커다란  금신상을 만들어 백성에게  선포합니다.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은 들으시오. 갖가지 악기  소리가 나거든 곧 엎드려 금신상앞에  절을 하시오.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않으면 당장 활활 타오르는 화덕에 집어 넣을 것이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세 젊은이, 즉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는 절을 하지 않았고, 바빌론 백성을 이를 보고 느부갓네살왕에게 고발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몹시 화를 내면서 이 세 젊은이들을 잡아오라고 하였고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너희는 활활 타오르는 화덕에 던져지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줄 신이 있겠느냐?” 그러나 세 젊은이는 대답합니다. “저희는 임금님이 말씀에 대답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주실 힘이 있으시면 거기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 저희는 임금님의 신을 섬기거나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에 절할 수 없습니다.”




이후로 화가난 느부갓네살왕은 이 세 젊은이를 불타는  화덕에 집어 넣었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불 속에 집어넣은 사람은 세 사람이었지만  네 사람이 타지도 않고 멀쩡하게 걸어 다녔던 것입니다. 이를 보고 느부갓네살왕은 놀라워 했고 세 젋은이를 화덕에서 꺼내어 구해내고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저들의 하느님께서,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목숨  걸고 당신만을 믿고 저희의 신 아닌 다른 신 앞에서는 절하지도 섬기지도  않는 이 신하들을 천사를 보내시어 구해 내셨구나. 이제 나는 영을 내린다. 인종이나 말이 다른  뭇 백성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에게 욕된 말을 하지 못한다. 욕하는 자는 죽이리라. 이처럼 자기를 믿는 자를 구해 줄 수 있는 신은 다시 없으리라.”




이 이야기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섬기고 살아갈 때 하느님이 그 상황이 고통스럽고 힘들더라고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구약의 세 젋은이를 보면서 우상을 멀리하고 하느님을 섬기고자 노력할 때 하느님이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현대 우리는 물질만능 혹은 황금만능주의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로 환산되고 인간 또한 인간 그 자체로서 존중되기보다는 재력과 관련지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는 하느님의 계명은 현대에 있어 다시 생각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바로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이유는 우상이 하느님을 대신해서 그 힘과 권력을 발휘하고 인간을 구원이  아니라 타락의 길로 걸어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보다  더 높은 무엇이 있다고  하여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있어 돈을 모르고 살 수는 없습니다.  돈은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돈은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만 사용될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인간을 억압하거나 인간보다 상위의 것으로 두고 목적으로 사용될 때는 돈은 하나의  우상이요 인간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거짓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는 대표적으로 현대인들에게 우상시 될 수 있는 돈에 대해서 다시금 고려해보고  반성해 새롭게 받아들이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돈도 하느님의 창조하신 좋은 피조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구원과 행복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어야지 없는 자를 차별하고 가난한 이들이 멸시하는 도구로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 인간의 근본적인 목적이요 삶의 가치로서 여겨져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서만 물질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그렇게 살아 갈 때 돈은 우상시 되지 않을 것이고 하느님이 그 안에서 더욱더 경배되고 찬미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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