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킬라 (하느님의 말씀 속에 있는 빛)

 

브리스킬라 (하느님의 말씀 속에 있는 빛)


                                                                     정원식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모두가 효자, 효녀는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부모님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고, 누구는 부모님들의 걱정거리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랑인 자녀들입니까? 걱정거리인 자녀들입니까?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랑스런 자녀들이 되기 위해 진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 안에 머무르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여기서는 브리스킬라라고 하는 초대교회의 인물을 통해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신약 교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교사인 브리스킬라 또는 브리스카로 불리는 이 여인은 남편 아퀼라와 함께 신약성서에서 6번이나 등장합니다(사도 18,2-3. 18. 26; 로마 16,3; 1고린 16,19; 2디모 4,19). 그 당시 부부를 지칭하려면 흔히 “아퀼라 부부”라고 했을 터인데 그들의 경우 부인의 이름이 남편 아퀼라와 함께 나오고 심지어 부인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이 더 많은 것으로 보아 브리스킬라의 활동이 그만큼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를 전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사람들로서 원래는 로마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는 49년에 그레스투스의 선동으로 유다인들이 로마에서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키기에 유다인들 모두를 로마에서 쫓아냈습니다. 이 때 브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도 유다인들이 국가를 위협한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반포된 ‘유다인 추방 칙령’에 의해 고린토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였는데, 보통의 노동자가 아니라 고린토에 천막을 만드는 조그만 공장을 소유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은 사도 바오로의 고향인 길리기아 지방의 특징적인 직업이기에 바오로 역시 그들 집에 머물러 함께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브리스킬라는 이처럼 바오로의 선교여행을 뒤에서 보필해주었습니다.




그 후 바오로는 고린토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교우들과 작별하고 브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떠납니다. 일행과 함께 에페소에 이른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나자렛 예수의 복음을 전한 후 브리스킬라와 아퀼라를 남겨 두고 에페소를 떠납니다(사도 18,18-22).




바오로는 훗날 교우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동지 브리스카와 아퀼라에게 문안해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살려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 여러분에게 문안해주십시오(로마 16,3).”




한편 에페소에는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와 있었는데 그는 성서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도하는 것을 들은 브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폴로는 그들에게서 성령을 통한 세례의 영적 의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사도 18,24-26).




이로 미루어보면 브리스킬라는 바오로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따라다니면서 천막제조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그들의 거처를 교회로 봉헌했던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서에 능통했던 에페소의 아폴로에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미루어 본다면 브리스킬라는 당대의 참으로 평판이 높았던 설교가요,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봉사자였음이 분명합니다.




세상에 산재한 많은 업무와는 달리 하느님의 복음을 가르치고 신앙을 증거하는 직책은 하느님께서 직접 허락해주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비로소 한 인간이 가르침의 기회와 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브리스킬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머물러 하느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오롯이 내어 맡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브리스킬라에게 가르침의 은사를 선물로 준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뽑힌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세상 곳곳에서 번져나가게 된 것은 단지 사도들 몇 사람만의 공로는 아닙니다. 바로 브리스킬라와 같이 숨은 곳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한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도 브리스킬라를 두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지”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박해 시대를 생각해봅시다. 비록 성인 대열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많은 은수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누리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서를 필사했습니다. 그런 이들 모두가 브리스킬라와 같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말씀 속에 머무른 이들입니다. 빛이신 그리스도를 전한 그들이야말로 몽매한 이들을 비추는 또하나의 빛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 즉 브리스킬라의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옛날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육화하신 것처럼 나약한 우리들의 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육화하도록 해야 합니다.




브리스킬라와 같이 헌신적인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 자신을 바칠 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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