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집필되었는가?

 

B. 언제 집필되었는가?


1 글레멘스에 히브리서의 일부가 인용되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늦어도 기원 95까지는 그 집필이 완료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르면 언제 집필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다소 까다로운 질문이다.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할 때 가장 이른 시기가 기원 60년 이전까지 소급한다는 주장은 내세울 수 없을 것 같다. 필자는 자기가 복음의 메시지를 예수 아닌 어떤 제3 자의 손을 빌어 전해 받았다고 한다(2, 3). 그러니까 그는 예수의 직제자도 아니고 그와 동시대인도 아니었다. 이 편지를 받은 독자들도 그 이전부터 이미 상당 기간 신자 생활을 해 오던 사람들이다(5, 12). 그들은 그전에 이미 박해도 받고 욕도 얻어먹었으며 감옥에 갇힌 일까지 있다(10, 32-34).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들이 처음 그리스도교로 돌아선 때부터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6, 4). 가장 이른 집필 연대와 가장 늦은 집필 연대는 그러니까 60년대에서 95년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이 간격을 좀더 좁힐 수는 없을까? 유다교의 제사 의식이 마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9, 6-10; 10,


1-4) 품으로 보아 집필 당시 예루살렘 성전과 그 성전 의식이 아직 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고 따라서 그 시기는 기원 70년 이전까지 소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 70년에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추리는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에서 전제하고 있는 성전은 헤로데가 세운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시나이에서 방황하던 때 광야에서 사용하던 장막 성전 또는 성막(聖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전에서 거행되던 여러 가지 의식 규정에 대한 필자의 독특한 해석도 어디까지나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원 70년까지 거행하고 있던 제사 규정을 자료로 삼아 하는 해석이 결코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다른 예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로마의 글레멘스, 유다교 역사가 요세푸스 그리고 미쉬나의 편수 자들도 70년 이후에 집필을 하면서도 예루살렘 성전이 마치 지금 서있는 것처럼 현재 시제()現在時制)로 서술하고 있었다.


히브리서에 보면 독자들이 박해를 당했다고 한다. 어느 박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까? 이 편지의 독자들이 로마에 거주하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가정할 때 필자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물질적인 손실을 입었지만(10, 32-34)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저항하지는 않았다”(12, 4)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언급은 글라우디오 황제가 기원 49년경 유다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사건과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네로 황제가 최초로 공식 적이고 조직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여 피를 흘리게 한 사건을 배경으로 할 때 가장 이해가 잘 된다는 주장을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이 편지의 수신 장소가 로마라고 치더라도 로마 교회 공동체 전체에 이 편지를 써보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해는 받았지만 피를 흘리기까지는 하지 않은 어떤 특정 층을 상대로 이런 편지를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수신 장소가 로마라는 주장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증이 안된 이론을 근거로 이 저서의 집필 연대를 추정하기란 더욱 어려운 노릇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히브리서에 개진된 교리 내용을 초대 교회의 교리 발전사(敎理發展史)에 맞추어 그 집필 연대를 추정하려는 시도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결정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대체로 그 연대가 속사도 시대(續使徒時代)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초기 가톨릭’이라고 할 수 있는 교리 발전 단계를 반영하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집필 연대는 기원 60년대에서 90년대 사이 어느 시기라고 느슨하게 어림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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