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1. 유형. 히브리서는 편지인가 아니면 신학 저서인가 아니면 일종의 장문의 설교인가? 이 질문에 언뜻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그만큼 이 저서가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13, 22-25를 읽어보면 이 저서가 하나의 편지라고 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저서의 첫머리에는 이 편지의 발신인이나 그 수신인이 전혀 밝혀져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 식 편지나 신약성서의 편지 양식이나 유다계 편지 양식을 보아도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모두의 인사말이 없는 것은 편지의 전승 과정에서 우연히 떨어져 나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니면 편지 끝의 마지막 인사말을 나중에 덧붙였기 때문에 이 저서가 하나의 편지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던 이런 이론은 결국 이 저서를 바울로의 서간집에 포함시키려는 의도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사실 바울로 아닌 다른 필자가 이 편지를 집필했는데 모두의 인사말을 지워 없애면 필자가 바울로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있고 따라서 바울로의 서간집에 쉽게 끼어 넣을 수 있을 것이었다. 반대로 결문(結文)의 인사말을 나중에 곁들이면 비록 모두의 인사말은 없을망정 바울로의 측근 인사인 디모테오와 함께 저자가 독자들을 찾아보겠다고 인사하면(13, 23) 이 편지는 사실상 바울로의 친필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저자와 함께 이탈리아에 사는 교우들이 함께 안부를 전한다는 말은 독자들이 이 이탈리아 교우들과 한 고향사람으로서 로마에 사는 교우들이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이론은 하나의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이 저서의 모두 1, 1-3 또는 1, 1-4는 그 자체로서 한 저서의  훌륭한 발제(發題로서 손색이 없다.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너무나 장중하고 구조적으로도 빈틈이 없다. 이어서 전개되는 이 저서의 내용을 조리 있게 요약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이 서두의 발제의 장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결문에 디모테오를 거명하는 대목은 필자가 바울로 자신이라고 할 때 무엇 때문에 필자 본인의 이름을 당당하게 대지 않고 넌지시 비치기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이곳의 디모테오가 과연 바울로의 제자이자 그 전도 여행의 동반 선교사였던 디모테오를 가리키는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마지막 인사가 후대에 첨가되었다는 주장은 본문 전승사상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한다. 이 결문이 바진 본문을 전하는 사본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결문을 필자 자신의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디모테오의 이름을 들고 있는 것은 필자와 바울로의 지지자들인 독자들과의 어떤 친화 효과를 내기 위해서 덧붙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인사도 이탈리아 출신의 교우들과 독자들이 한 고향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필자와 독자와의 통신을 좀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덧붙인 것일 것이다.


같은 결문에 따르면 필자는 이 편지를 일종의 `격려의 말’, 권고의 말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실상 이 저서의 내용을 보면 이 말은 이 저서의 문학 유형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해준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저서에는 교리 설명 부분과 권고와 격려와 경고 부분이 엇갈려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저서는 따라서 하나의 기다란 성서 강해 또는 설교 또는 훈계라고 할 것이다. 우리 필자의 설교가로서의 수법은 특히 3장과 4장에서 잘 지켜볼 수 있다: 우선 서론 부분에서 주제를 밝힌다(3, 1-6). 이어서 성서를 인용한다. 시편 95이다(3, 7-11). 이 교리 설명 부분은 마지막의 경고와 훈계에 와서 그 절정과 동시에 결론에 이른다(3, 12-4, 11). 이어서 하느님 말씀에 관한 수사적인 서술이 이 부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4, 12-13).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8장-10장에서도 우리는 이와 똑같은 짜임새를 확인할 수 있다: 서론에 이어(8, 1-6)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을 대조하는 기본 틀이 마련된다. 이 둘의 대립과 대조라는 틀은 다음 부분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성경 인용이 따르고(예레 31, 31-34) 동시에 또 다른 대당 명제가 도입된다(9, 1-10, 10). 묵은 계약과 새로운 계약, 묵은 대속죄일 제사와 종말의 대속죄일 제사의 대립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10, 11-18에서 이 부분의 설교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그런데 이 두 본문에는 이와 같이 교리의 설명 부분과 경고 부분에 이어 똑 같은 형식으로 격려의 말이 곁들여진다(4, 14-16; 10, 22-25). 성서를 설명해주는 부분도 같은 구도로 짜여있다(2, 5-18; 7, 1-28; 12, 1-13 참조할 것).



이 글은 카테고리: 신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