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구원관.
교리 설명 부분에서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역시 그리스도론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못지 않게 중요한 다른 주제들도 없지 않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업적의 최종적인 목적은 `구원’이다(1, 4; 2, 3.10; 5, 9; 6, 9; 9, 28). 이 구원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구원은 소극적으로 말하면 우선 다가올 심판을 모면하는데 있다(120, 29-31). 이 심판은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치워 없애시기로(1, 12; 12, 26-28) 예정하신 날(10, 25)에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시는 불이시기 때문이다(12, 29).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구원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유산을 상속받는데 있다(4, 1; 6. 17; 9, 15; 10, 36). 이 약속은 장차 올 세상에서(2, 5) 완전히 이뤄질 것이다. 그때는 그리스도의 승리도 완벽한 것이 될 것이다(1, 13; 2, 8; 10, 13). 그러나 이 구원은 지금부터 벌써 미리 맛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6, 5). 그때는 또한 우주의 질서가 바로 잡히는 때이기도 하다(9, 10). 구원을 미 맛볼 수 있는 체험은 새로운 계약 생활에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계약은 예배하는 사람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주기 때문이다(9, 14; 10, 2).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10, 10) 마침내는 비록 일시적인 것이지만 `완전’에 이르게 될 것이다(10, 1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당하셨다가(5, 8-9) 현양되신 다음에야(2, 9) 완전하게 되신 것처럼,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완성도 그들이 최종적인 영광에 이르게 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2, 10). 구원이 하나의 과정이고 도정이며 그 구원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는 나그네길을 걷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상징이 잘 보여준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 지상에서 나그네이며 외국인이며 하늘 나라에서 멀러 떨어져 사는 실향민이다. 그러기에 이 백성은 떠나온 하늘의 고향을 그리워한다(11, 3-16). 이 하늘의 고향은 하느님이 몸소 세우신 하늘의 도시이기도 하다(11, 10; 12, 22-24). 또 이 구원의 최종 목표는 `휴식’ 또는 `안식’에 있다고 말한다. 이 상징은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가나안 복지를 차지하고 취하게 될 휴식을 소재로 하는 상징이다. 4에즈라와 필로,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영지주의자들조차 이 소재를 구원받은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이르게 될 장소나 어떤 위치, 또는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널리 활용했다. 필자가 제시하는 시편 95(4, 3-10)의 주해도 이와 동일한 계통에 속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약속된 이 안식을 사실상 하느님이 6일 동안의 창조 사업을 마치고 7일째는 쉬셨다는, 하느님 자신의 안식일 축제의 휴식과 동일시한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