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희생

어떤 문화권에 속하든지 종교에는
신 또는 제신(諸神), 신령등에게 ‘공물'(供物)을 올리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물을 일종의 물물교환으로 여겨,
신 등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대신 특별한 혜택 또는 용서 또는 가호를 비는 행위입니다.

신이나 제신이 인간을 위협하는 무서운 힘을 갖추고 있는 경우에는
이들을 가라앉히는 목적도 거기 있습니다.
우리네의 지진제(地鎭祭)가 좋은 예로서,
제물을 올려 지신(地神)을 잘 모시려는 고사가 있습니다.

원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원한을 품고 그 풀이를 하는 혼을 두고 하는 말로서,
이런 경우에도 그 원혼을 달랠 필요가 있습니다.
공물은 저마다의 문화에 따라 그 형태가 가지가지입니다.

농경민족은 주로 과일이나 곡식이나 야채를 바쳤고,
유목민족이나 가축을 기르는 민족은 주로 짐승을 바쳤습니다.
하여간 그 민족으로서는 가장 귀중한 것을 바쳐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흔히 생각하듯이 유목민족이 아니라 가축을 치는 농민이었습니다.
짐승을 봉헌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산 채로 신에게 바치는 일이라서 글자 그대로 ‘희생'(犧牲)입니다.

불교에는 윤회라는 사상이 있기 때문에
동물의 희생 대신 살아 있는 인간을 바친 이야기도 전합니다.
에밀레와 심청이의 경우가 여기 해당하는 듯합니다.
옛날 옛적 일본에서는
다리를 놓거나 제방이나 성을 쌓는 난공사가 무사히 이루어지도록 비는 뜻에서
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흙이나 물 속에 산 사람을 묻은
이른바’이또하시라’ 의 흔적이 출토되기도 합니다.
고대중국에도 이런 흔적이 보인다고 합니다.

희생에 관한 매우 상세한 기록을 남긴 나라는 이스라엘 이외에 아마 없을 것입니다.(레위1-7장)
특히 맏아들(맏배,맏물)은 소중한 제물이었지만
마침내 맏아들을 희생하는 것은 금지되고 그 대신 짐승을 봉현하게 되었습니다.
루가 복음2장 22-24절 보면
예수님의 양친이
아드님을 주 하느님께 드리기 위해 비둘기를 희생으로 바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 희생의 또 하나의 요소는 피흘림이었습니다.
피는 곧 생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에(31장’피’ 참조)하느님께 올리는 특별한 봉헌물이 되었습니다.
속죄의 희생을 비칠 때에는 사제가 쫓아버릴 짐승의 머리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죄가 그 짐승에 씌워져
그 짐승이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가 용서 받는다고 믿었던 것입니다.(레위4 24-26)
예언자 시대부터는 희생제사가 형식화 될 위험이 지적되면서(아모25,21-23),
산 희생제물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람의 올바른 마음과 착한 행실이라고 강조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10절에 “하느님, 저(예수)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나중 것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것을 폐기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몸을 바치심으로써” 라 한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최고 최후의 희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빵과 포도주에 의한 신비적인 희생이 되시어
오늘날 교회가 드리는 예배의 중심”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려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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