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印), 좀 어려운 표현으로는 인호(印號)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양에서는 오늘에 이르러 만사를 소위 사인으로 통용합니다만,
본래는 어느 나라에서든 인감(印鑑)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우리들이 서류에 날인 하듯이 인감은 공식으로 문서를 정당화는 데 쓰였습니다.
특히 매매의 경우 인감의 유무가 문제되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용지 대신 얇은 점토판을 썼습니다.
거기에 내용을 적고 인감을 찍어 구워서 굳혔습니다.
그렇게 굳히고 나면 언제까지나 증거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지역에서는 오늘까지도 그러한 점토판이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인감은 흔히 손가락에 낀 반지하든가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의 모양을 뜬 것이었습니다.
루가 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 중에
“이제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15,21) 하며
돌아온 자식의 손가락에 아버지는 반지를 끼워 줍니다.
그것은 아들에게 모든 권리를 되돌려주는 의미를 띱니다.
이때부터 아들은 아버지 대신 문서에
도장을 찍을 수도 있고 장사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교황님의 인새(印璽)는 반지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인감은 사인과는 달리 본래 주인의 허락 없이도 날인 될 위험이 있습니다.
열왕기 상권22장 8절에 보면,
“이세벨(왕비)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이름으로 밀서를 써서 옥새로 봉인하고”
악한 일을 꾸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감에 의해 소유자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아가의 여인은
“가슴에 달고 있는 인장처럼 팔에 매고 다니는 인장처럼
이몸 달고 다녀 다오”(8,6)하며 노래합니다.
고린토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우리를 굳세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맡겨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확인 해 주셨고
그것을 보증하는 인호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2고린1,21-22)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우리들의 마음에 인장을 찍어
우리를 당신 것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의 묵시록에는
하느님의 도장을 지닌 천사가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이 도장을 찍을 때까지는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치지 말아라”고 외치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습니다(7,3).
세례와 견진 때에
사제 또는 주교가 영세자나 견진자의 이마에 성향유를 바르는 것도
하느님의 인장을 찍어 그교우가 하느님의 것임을 드러내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