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이라는 수는, 천 개라는 보통의미 외에도,
성서에서는 아주 ‘많다’는의미로 쓰입니다.
우리가 쓰는 ‘천태만상’의 천 같은 뜻이겠습니다.
예를 들어,
요나서에 하느님께서 마지막으로
”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도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고 말씀하십니다.(4,11)
다시 말해 니느웨의 인구가 대단히 많았다는 의미입니다.
성서에서 쓰는 히브리어에는 천 이상의 수를 기리키는 말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말 같으면 천 위에는 만. 만 위에는 십만, 십만 위에는 백만,
백만 위에는 천만, 천만 위에는 억. 억의 일만 배는 조, 조의 일만 배는 경이라는 식으로 셉니다.
히브리 말 같으면 만은 십천. 십만은 백천, 백만은 천천–이런 식으로 나갑니다.
여담입니다만,
번역은 곧 오역이다 또는 반역이다 따위 말은,
이 말에서 저 말로 문자 그대로 옮기다 보면 생각지도 않던 잘못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2천2백 년전 구약성서의 집회서 머리말에 독자들에게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구절의 번역이 혹 잘못되었으면 널리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
원래 히브리어로 표현된 말을 다른 언어로 번역해 놓으면,
그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수가 많다”고 미리 말해 두고 있습니다(15-22절).
성서에서의 ‘천’에 관해서는 번역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마저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이 그 예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각각 일만이천명이 구원의 날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7,5-8).
‘열둘’이란 상징적인 수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일으키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12사도를 뽑으신 것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그리고 신자 공동체인 교회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열둘을 천으로 곱하여 일만 이천 명으로 함으로써
요한 묵시록은 12지파 하나하나가 모조리 구원된다는 것,
바꿔 말해 구원된 사람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듯이
그저 글자 그대로 일만 이천명만이 구원받는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또 12지파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씩의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12곱하기12 곱하기1000이므로 모두 합해 144,000명이 됩니다.
우리말 묵시록에는 그대로 ‘십사만 사천 명’으로 옮겨놓았으나(7,4),
이것은 열둘의 제곱의 천배,
다시 말해 구원받는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싱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입니다.
묵시록의 이대목을 우리말로 옮겨
일만 이천 명이라고 써 놓으면 12곱하기1000명의 상징적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히브리 말 그대로 십이천이라고 쓰면 괜찮겠지만
우리말로는 일만 이천이라고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오역이 아니라 그대로는 번역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해야 옳겠지요.
한가지 해결책이 있다면
일만 이천이라는 말 뒤에 12곱하기1000 이라고 숫자로 적어 넣으면 좀 나아질 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