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유다교라는 모자이크는 통치권자들의 도발에 의해 분쇄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유다인들은 그러한 도발이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라서 수동적으로 복종할 수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 영역의 원칙을 대체할만한 대안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하느님이 그처럼 잔인한 불의를 편드실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이 침묵 가운데 계실 수 없고 또 그렇게 계시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하느님이 보복해 주실 것을 믿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진노가 폭력적인 혁명주의자들을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의 진노는 폭력이라는 인간적 수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런 사람들은 평화로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카리스마적 교사들에게 모여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