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제 4의 철학의 등장
2.1.1. 아뜨롱가우스(Athrongaeus)
목동으로서 왕을 자처하고 나서, 전국에서 기습토벌대를 일으켰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는 로마인들과 궁중인들뿐 아니라 운 나쁘게 그의 손에 붙잡힌 부자 유다인들까지도 무참히 희생시켰다. 이러한 폭동이 유다를 뒤흔드는 동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한편으로는 헤로데의 왕위를 노리는 경쟁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헤로데와 같은 꼭두각시 왕을 시켜 유다를 통치할 것인지 아니면 로마에서 직접 임명한 자를 시켜 통치하게 할 것인지에 관해 숙고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결국 직접 통치 쪽을 택하였다.
2.1.2.유다와 바리사이파 사람 사독
코포니우스는 유다인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한 행동의 하나로 그의 새로운 통치를 시작하였다. 총독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강제 징수할 세금의 총액을 정하기 위해 유다인들의 인구조사 및 재산평가를 지시하였다. 유다인들은 이러한 조치에 충격을 받고 반항할 태세를 취했다. 대사제의 호소로 하마터면 비극적인 충돌이 될뻔한 사태를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현자, 유다와 사독은 하느님만이 절대군주 곧 황제라고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백성들에게 반란을 선동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기치 아래 모여들었다. 그들은 기존의 세 가지 철학들, 즉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에쎄네파와 나란히 유다교 내의 제 4의 철학을 탄생시켰다. 제 4의 철학1)을 추종하는 자들은 다른 모든 이슈들에 있어서는 바리사이파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유다교의 핵심적 가르침을 침해하지 않는 한 황제의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바리사이파의 주장은 거부하였다.
제 4의 철학이 출현함으로써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영역과 종교적이면서 비정치적인 영역을 구분하는 희미한 경계선이 그어졌다. 제 4의 철학을 창시한 자들의 관점에서는 로마에 저항하는 혁명에의 부름은 정치적인 열정이 아닌 종교적인 열정에 의해 고무된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개인을 절대군주(despotes), 주님(lord), 주인(master), 혹은 황제(emperor)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하였다. 오직 하느님만이 절대군주, 주님, 주인, 황제였다. 그들의 무장을 호소한 것에는 유일한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던 아티오쿠스를 전복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한 무장 요소는 정치적인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촉발되거나 정당화되지는 않았다2).
그러나 대사제 요아자르(Joazar)나 바리사이파 지도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인구조사나 재산평가 그리고 세금납부는 카이사르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볼 때,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하느님께 세금을 내는 것과 동일하지 않았다.
2.2. 제 4 철학
이 혁명주의자들과 그들의 제 4 철학은 AD 71년 마싸다에서 그들의 생명과 폭력이 끝날 때까지 로마인들과 그들의 유다인 협력자들에게 평화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제 4 철학의 추종자들은 두 영역의 원칙을 거부함으로써 로마인들과 그들의 하수인인 대사제들의 반대 뿐 아니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반대까지 야기시켰다. 이 제 4 철학의 추종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교리를 신봉했었고, 아직도 두 영역의 원칙을 제외한 그들의 다른 원칙들은 고수하고 있었다. 로마 당국자들과 그들의 유다인 하수인들은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였다. 따라서 로마 당국자들과 대사제들은 제 4 철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제 4 철학의 추종자들은 무력으로 로마 통치를 전복시키겠다는 생각을감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을 뿌리 뽑으려는 노력은 너무도 정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참고1: 요세푸스는 제 4의 철학이 많은 추종자들을 끌었다고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이 사람들은 모든 불행의 씨앗을 뿌렸다. 그들은 온 나라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철학의 신기함 때문에 광신적인 추종자들이 수없이 몰려들자, 그들은 즉각 나라 안을 폭동으로 들끓게 하고, 그 결과로 일어날 모든 말썽의 씨앗을 뿌렸다’(고대사ⅩⅧ:6; 9-10). [02/23-22:37]
참고2: 요세푸스는 이 혁명적 운동을 유다교내의 다른 종교철학들의 사상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중요하게 취급했는데 이것은 로마에 대한 이 폭력적 저항이 종교적 원천에서 나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02/23-22:37]
참고3: 유다와 사독의 종교적 부름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해야만 했다. [02/23-22: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