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돼지

유대교에서는 ‘부정(不淨)’을 대단히 꺼립니다.
그런데 부정 중에는 죄의 결과가 낳는 도덕적인 부정뿐 아니라
위생상의 부정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은 정(淨)하지 못해서 그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 식입니다.

유대교 사회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마저도
부정한자로 보아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만약 부득이 상관했을 경우는 나중에 온 몸을 물로 씻어 정화해야 했습니다.
부정에 관한 이러한 생각이 위생 때문에 생겼는지
아니면 금기 때문에 생겼는지는 종교학자들도 잘 모릅니다.

참으로 정(거룩)한 존재는 하느님뿐이십니다.
유대교인은 ‘청정’과 ‘신성’을 동일시하였습니다.
부정을 씻는다는 개념은 중요합니다.
아무도 하느님 만큼 청정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자기자신을 정하게 보존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구약성서의 레위기에는 부정에 관한 많은 규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돼지(멧돼지)를 가장’부정한 짐승’으로 취급했습니다.(11,7).
그 이유는 어쩌면 돼지가 진창을 좋아하고 지저분한 것을 먹기 때문이었겠지요.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도
“돼지는 몸을 씻겨주어도 다시 진창에 뒹군다”(2,22)는 속담이 나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과 그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회교도들은 절대로 돼지고기를 안 먹습니다.
만약 먹으면 살인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죄가 됩니다.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당해 순교가지 한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마카베오서에 보면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왕에게 강요받고도
그걸 어찌 먹을까보냐고 대답하며
순교한 일곱 형제와 그 어머니의 사화가 실려 있습니다(후서7장).

신약성서 안에도 돼지 이야기가 가끔 나옵니다.
루가복음에는 아버지에게서 나누어 받은 유산을 탕진해 버린 끝에
다음날 먹을 것조차 없게 된 자식이 몸부쳐 살게 된 집주인이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15,15)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곤궁하다 못해 얻은 일거리가 고작 더러운 돼지를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태오 복음 8장31절에는
사람에게 들렸던 마귀들이 예수님께 와서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들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면서
저만치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던 돼지떼를 가리켰다고 합니다.

마태오7장6절의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주지 말라”는 속담도
귀중한 것을 아무 값어치 없는 돼지에게 주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마르7,19).
더러운 것은 도덕적인 죄악뿐이고
다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지어내셨기 때문에 깨끗하다는 말씀입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덕분에 맛있는 돼지고기를 실컷 먹을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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