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부르는 호칭들 ,그리스도”와 “다윗의 아들”, 인자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들


➢그리스도”와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를 그리스어로 의역한 존칭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임금 즉위식 때나 제관 임관식 때에 머리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에 임금이나 제관을 메시아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을 이상적으로 다스릴 성군을 메시아라고 했다. 그는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리라는 통설로 말미암아 “다윗의 아들”이라고도 한다(1사무 7,12-16; 시편 132,17). 미래의 메시아 곧 다윗의 아들은 정치적 인물이라는 점에 유의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정치인은 아니셨다. 따라서 평소에 한 번도 메시아로 자처하지 않으신 것 같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는 그분이 다윗의 아들로 행차하는 양 군중들이 환성을 질렀지만(11,10) 예수님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최고 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메시아로 자처했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결국 국사범으로 처형되셨다(15,2. 9. 12. 18. 26. 32).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서슴없이 그분을 메시아로(마르 8,29; 사도 2,36; 1요한 4,2) 또는 다윗의 아들로(로마 1,3-4) 받들었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정치적 인물이 아니셨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으므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러한 존칭들을 예수께 드릴 수 있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초대 교회로부터 두 가지 존칭을 물려받았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과 같은 뜻으로(1,1; 14,61-62) “그리스도” 존칭을 애용했으나, “다윗의 아들” 존칭만은 다소 경원시한 것 같다(12,35-37). 마르코 복음서에는 “그리스도” 존칭이 일곱 번(1,1; 8,29; 9,41; 12,35; 13,21; 14,61; 15,32), “다윗의 아들” 존칭이 네 번(10,47-48; 12,35. 37; 참조 11,10) 나온다.




➢“인자”


        인자는 신약성서에서 언제나 예수님을 가리키는 존칭인데, 사도 7,56; 묵시 1,13; 14,14를 제외하면 네 복음서에만 나온다. 네 복음서에서는 예수 친히 인자로 자처하셨지 제 삼자가 그분을 인자라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종말에 재림하실 인자, 수난 하실 인자, 이승에서 활약하시는 인자로 자처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 친히 인자로 자처하셨다고 보는 설보다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을 인자로 추대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면 초대교회 신도들이 어떻게 예수님께 인자라는 존칭을 드리게 되었을까? 다니엘 7,13-14절과 이디오피아어로 전해오는 헤녹서 34-69장, 에즈라 4서 13장 등의 묵시문학에 처음으로 나오는 “인자”는 하늘에 살다가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올 초월적 존재이며 종말론적 심판관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계에서는 이미 부활하여 하늘에 계시고 장차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예수님이 인자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예수님을 인자라 일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미 부활하셨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또한 이승의 삶을 영위하신 까닭에 수난하신 예수와 이승의 예수님을 인자라고 하게 되었다. 마르코 복음서에 나오는 이승의 인자는 사죄 전권(2,10), 안식일 전권(2,28)을 행사하신다. 어록에도 이승의 인자에 관한 말씀이 있다(마태 8,20 = 루까 9,58; 마태 11,19 = 루까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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