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에서 드러나는 예수님

 

마태오 복음에서 드러나는 예수님


마태오 복음서는 고도로 발달한 그리스도론을 가르치고 있다. 마태오는 예수님을 유다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확신하면서, 그분을 하느님이 구약때 주신 모든 약속을 이행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아울러 마태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입각해서 예수님의 인품과 업적을 평가했다.




㉠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


이 복음서의 고유한 외형을 선사해 주는 5개의 주요 설교는 모세의 율법서인 모세 오경을 연상케 하고 이는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율법을 선사하는 새로운 모세를 발견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처럼 계시의 산에 오르시며(5,1), 산상 설교로 새로운 계명을 부여하시고 구약의 모세처럼 열 가지 기적을 행하신다(8-9장).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8,2-4), 백인 대장의 하인을 고치신 예수(8,5-13),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예수(8,14-15),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예수(8,23-27), 마귀 들린 사람을 고치신 예수(8,28-34), 중풍 병자를 고치신 예수(9,1-8), 하혈병을 앓던 여인을 고치신 예수(9,19-22), 회당장의 딸을 고치신 예수(9,23-26), 소경 두 사람을 고치신 예수(9,27-31), 벙어리를 고치신 예수(9,32-34).




㉡ 구약 예언자들의 실현이신 예수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구원을 성취하셨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마태오는 구약성서의 “성취 인용문”과 “도입 인용문”을 많이 이용한다. 이로써 마태오는 예수만이 구약 예언의 실현자이심을 드러낸다


㉢ 율법의 참 해석자이신 예수


마태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완성하셨다(5,17-1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세칙보다 하느님의 뜻을 중히 여기셨다(12,50; 15,4; 19,6-8; 21,31). 그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을 수 없겠는데, 마태오는 자기 나름대로 세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 첫째, 하느님은 제사나 십일조보다 자비를 바라신다는 것이다(9,13; 12,7; 23,23). 둘째, 율법은 저 유명한 황금율로 환원된다는 것이다(7,12). 셋째, 율법은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22,40). 마태오는 이처럼 예수님께서 밝혀 주신 율법의 참 뜻을 익히고 행하는 사람만을 참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참 해석자이면서 동시에 완성자가 되신다.




㉣ 그리스도(메시아) -다윗의 아들- 임금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오 복음서에 열일곱 차례 나온다(1,1.16.17.18; 2,4; 11,2; 16,16.20.21; 22,42; 23,10; 24,5.23; 26,63.68; 27,17.22). 이 중에서 몇 가지만 찾아보자. 서두의 족보를 일컬어 “아브라함의 아들이요 다윗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책”이라 한다(1,1).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신 까닭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2,4).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그리스도의 일들이다(11,2).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아들이시며 또한 다윗의 주님이시다(22,42). 시몬 베드로가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한 신앙고백(16,16)을 예수님은 받아들이신다. 빌라도 앞에 서 있는 예수님께 군중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을 강력히 부르짖었다(27,22).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다. 이렇게 마태오는 예수를 이스라엘이 고대한 구원자,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다. 그 구세주(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태어난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윗의 아들” 존칭은 열 차례 나온다(1,1.20; 9,27; 12,23; 15,22; 20,30.31; 21,9.15; 22,45).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면 예수님의 양부 요셉이 다윗의 후예이므로 예수님도 다윗의 아들이 되신다(1,20). 그 용법을 보면 병자들이 예수께 치유를 간청할 때(9,27; 15,22; 20,30,31),그리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환호할 때(21,9,15)그런 호칭으로 부른다. 또한 그리스도-다윗의 아들과 상통하는 개념이“임금”인데, 이 존칭은 마태오 복음서의 여덟 차례 나온다(2,2; 21,5; 25,34.40; 27,11.29.37.42).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유대인들의 임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방에서 온 이방인 점성가들은 유대인들의 임금님께 경배하지만(2,2),빌라도나(27,11), 예수님을 조롱한 로마 군인들이나(27,29),십자가에 죄목을 붙인 로마 군인들은(27,37) 유대인들의 임금을 업신여겼다. 최고 의회 의원들은 유대인들인지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자기네 표현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임금”이라 했지만, 역시 그분을 놀리는 수작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이승에서는 놀림감이 되셨지만, 종말 심판 때는 “임금”으로 오시는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다(25,34.40). 신약성서 작가들 가운데서 마태오 홀로 종말 심판관 인자를 “임금”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인자의 나라”(정확히 인자의 왕국 또는 인자의 왕정)라는 표현이 신약성서 가운데서 오직 마태오 복음 13장 41절과 16장 28절, 20장 21절에만 나온다. 인자의 왕정은 보편적이라 온 세상에 미친다. 그분의 왕정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종말에는 만천하에 밝히 드러날 것이다.


㉤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마태오 복음서에는 아들, 내 아들, 그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스물 한 차례 나온다(2,15; 3,17 두 번.38; 22,2; 24,36; 26,63; 27,40.43.54; 28,19). 몇 가지만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셨으나, 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신 까닭에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셨다(1,21.23.25). 예수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인 이스라엘 백성과의 연대성 때문에 에집트에 피신했다가 귀향했다(2,15). 세례 때(3,17), 그리고 변모 때(17,5), 하느님 친히 예수님을 소개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그를 어여삐 여겼노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고하셨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4,3.6; 26,39.42).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전권을 물려받으셨다(11,27; 28,18). 그리고 “아버지가 아니면 아무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아들과, 그리고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11,27)라고 단언하셨다. 제자들(14,33), 베드로(16,16), 백부장(27,54)이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또한 최고 의회 심문 때 예수 친히 하느님의 아들로 자처하신다(26,63-64).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과 가까운 존재들을 일컬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천사, 이스라엘 백성, 백성의 대표자인 임금, 의인을 그렇게 칭했다. 예수님도 하느님과 가까운 까닭에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럼 얼마나 가까울까? 하느님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하셨으니(3,17; 17,5) 이는 각별히 가까운 아들이라는 선언이다. 사실 “사랑하는 아들”은 요한계 문헌에 나오는 “외아들”과 같은 뜻이다(요한 1,14.18; 3,16,18; 1요한 4,9). 첫 순간에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니 예수님은 하느님의 친아들인 셈이다. 친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1,23).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곧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은 거의 같은 위치에 있는 셈이다. 아울러 그 옛날 하느님께서 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듯이, 이제 아드님께서 세상 종말까지 항상 하느님의 새 백성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다(28,19-20).




㉥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시는 종이신 예수


마태오만이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에 관한 신탁을 예수께 명확하게 적용시키고 있다(이사 42,1= 마태오 12,18; 이사 53,4= 마태오 8,17).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병고와 죄를 짊어지시는 “구원자”이시다. 그분은 죄의 사함을 위하여 ‘모든 이들을 위하여’ 당신의 피를 흘리신다(이사 53,12= 마태오 26, 28). 한마디로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통받는 야훼의 종처럼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당신 피를 흘리신 분이다. 이렇게 마태오는 예수를 구약 예언의 실현자, 완성자로 묘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이심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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