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의 아들들. 아르켈라오.헤로데 안티파스, 헤로데 필립보,

 

헤로데의 아들들




로마는 헤로데가 죽은 뒤 그의 뜻에 따라 왕국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큰 아들 아르켈라오에게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민족영주의 칭호와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유다와 사마리아의 관리들은 아르켈리오의 폭정과 국정 수행의 무능력을 들어 아우구스투스에게 그를 폐위시켜 달라고 호소하였다. 마태오복음의 유년 사회에 보면 헤로데의 영아 살해를 피하여 이집트로 피신한 요셉은 헤로데의 뒤를 이어 아들 아르켈라오가 유다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가기가 두려워 갈릴래아의 나자렛에 정착한다.(마태 2,22-23). 아르켈라오는 기원후 6년에 권좌에서 쫓겨났는데, 이 때 예루살렘에 주둔한 로마 군대가 아르켈라오의 폐위를 도왔다. 아르켈라오가 다스리던 지역의 통치는 황제가 임명한 행정관들에게 맡겨졌다. 그 행정관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본시오 빌라도(기원후 26-36년)이다. 우리말 성서에서는 이 행정관을 보통 총독으로 옮긴다. 그래서 ‘빌라도 총독’이라는 말이 귀에 익다.


신약성서에서 역시 사분영주로 소개되는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요르단강 동부 베베아의 통치권을 넘겨받았다. 그는 교활하고 야심많은 통치자였고 그의 아버지처럼 건축 사업에 열정을 보였다. 갈릴래아에 세운 세포리스와 티베리아(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바침)가 그의 대표적인 공적이다. 어느 날 안티파스가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방문하였는데, 이 때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눈이 맞았다. 이 헤로데 필립보는 아래에 언급할 또 다른 사분영주 필립보와는 다른 인물이다. 사분영주 필립보는 마르 6,17과는 달리 헤로디아가 아니라 그녀의 딸 살로메와 혼인하였다. 한편 안티파스와 혼인한 헤로디아는 그의 다른 이복형제 아리스토불루스의 딸이었다. 동생이 아직 살아있는데도 그의 아내와 혼인한 것은 명백하게 레위기법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그것은 불결한 짓이다. 그가 제 형제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므로, 그들은 자손을 보지 못할 것이다”(레위 20,21: 참조: 18,16). 안티파스는 이 혼인을 위하여 나바테아 임금 아레타스 4세의 딸인 본처와 이혼하였다. 나중에 나바테아 임금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안티파스를 공격하여 패배시킨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이 나서서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혼인을 부당하다고 고발한다. 이 때문에 요한은 체포되어 헤로디아의 요새 마캐루스에 갇히고 그 곳에서 죽음을 맞는다(「유다고대사」 18.5.2).


예수께서는 안티파스를 가리켜 ‘그 여우’ (루가 13,32)라 하셨다.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한번 만나고 싶어하였는데(9,7-9), 실제로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그의 원의가 이루어졌다(23,7-12). 안티파스는 선왕의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은 타고났으나, 그의 통치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기원후 37년 로마 황제가 된 칼리굴라는 자기 친구이자 헤로디아의 오빠인 아그리빠 1세에게 필립보의 영토와 사분영주 칭호를 그대로 넘겨주었다. 이것을 본 헤로디아는 황제에게 같은 칭호를 청하라고 자기 남편 안티파스를 부추겼다. 그러나 아그리빠가 먼저 선수를 쳐, 안티파스가 황제를 거슬러 반란을 꾀하였다고 칼리굴라에게 고발하였다. 그 결과 39년에 안티파스는 자기 아내 헤로디아와 함께 갈리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헤로데의 셋째 아들 필립보는 갈릴래아 호수의 북동쪽 땅,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통치권과 사분영주의 칭호를 받는다. (루가 3,1) 그는 비교적 온화하고 의로운 통치자였다. 더구나 그가 다스리게 된 영토는 비유다인들이 사는 지역이어서 아르켈라오나 안티파스의 영토에서 볼 수 있는 로마인들과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갈들이나 충돌이 없었다. 필립보도 건설 사업에 손을 대었다. 그는 요르단강 살류 근처에 있는 도시 파네아스를 재건하고 로마 황제를 기리기 위하여 체사레아 필립피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메시아 고백을 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이 바로 이 곳이다(마르 8,27-30). 필립보가 죽은 뒤에 그의 영토는 잠시 시리아 지방에 귀속되었다가 37년 헤로데 아그리빠 1세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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