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 아그리빠 1세

 

헤로데 아그리빠 1세




헤로데 아그리빠 1세는 헤로데 대왕의 손자로서 기원후 44년 그가 죽을 무렵에는 이스라엘 전역의 임금이 되어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37년 그의 친구 칼리굴라가 로마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사분영주 필립보의 영토(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를 물려받고, 39년에는 갈리아로 귀양 간 안티파스의 영토(갈릴래아와 베레아)도 넘겨받았다. 41년 칼릴굴라가 암살된 뒤에 로마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는 아그리빠의 왕권을 인정하고 빌라도가 통치하던 유다와 사마리아도 그의 영토에 귀속시켜 주었다. 이제 아그리빠는 자기 할아버지 헤로데 대왕이 소유한 것과 똑같은 영토와 칭호를 얻게 되었다. (참조: 사도 12,1).


아그리빠는 유다인들의 화심을 사려고 노력하였다. 칼리굴라가 자기 동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라고 지시했을 때도 그는 그 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유다인들의 청원을 황제에게 전달하였다. 그는 사두가이들의 친구이면서도 바리사이들의 호감을 샀다. 별로 현실성 없는 계획이었지만, 예루살렘의 북쪽 경계를 방어하기 위하여 세 번째 성벽을 쌓기 시작한 것도 유다인 신하들의 신뢰를 얻어 내기 위한 방책이었다. 사도 12장에 묘사된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도 유다교에 대한 아그리빠의 열정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요세푸스와 사도행전의 저자(사도12,21-23) 둘 다 헤로데 아그리빠 1세가 가이사리아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전한다(「유대고대사」19,8.2). 아그리빠는 나중에 아그리빠 2세가 된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남겼다. 세 딸 가운데 둘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르니게(사도 25,13.23:26,30)와 로마 행정관 펠릭스와 결혼한 드루실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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