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족

 

씨족




  두 번째 사회구조인 씨족은 친 ․ 인척의 여러 가족이 모여 이루어진다. 씨족의 규모나 개념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은 어려우나, 부족 조상들의 아들들이 씨족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민수 1장과 26장의 목록에서 씨족의 구분을 확인 할 수 있다. 씨족은 유목 생활에서 스스로 지키는 데 필요한 최소 단위였다. 가나안에 정착한 뒤에 씨족 단위는 마을로 대치된다. 마을은 여러 가정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특수한 방어수단을 갖추지 못하였다. 반면에 도시 또는 성읍은 암벽이나 성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의 침입을 방어할 만한 기능을 갖춘 장소로서, 유사시에는 여러 마을이 이 곳으로 모여와 안전하게 난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마을들은 성읍에 세금을 지불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방어기능을 갖춘 도시를 어머니로, 마을은 딸로 불렀다. 신약 시대에도 이런 도시와 마을 사이에 구별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방어기능의 유무로서가 아니라 로마에서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 자치권의 유무로 둘 사이를 구별하였다. 곧 도시는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역인 반면 마을은 자치권이 없었다.


예를 들어 벳파게, 베다니아, 베들레헴, 엠마우스 따위는 자치권이 없는 마을이었고, 나자렛, 가파르나움, 나인 따위는 자치권을 행사 할 수 있는 도시였다.


  씨족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특성은 철저한 연대의식 또는 책임의식이다. 여기서 우리는ꡐ구속자ꡑ또는ꡐ속량자ꡑ의 개념을 만나게 된다. 히브리어로ꡐ고엘ꡑ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의 역할은 씨족 내의 가난하고 허약한 구성원을 보호하는 것이다. 씨족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강한 연대성 때문에  한 구성원이 당한 손상이나 손해를 씨족 전체가 당한 것으로 여긴다. 보통 피해자는 복수할 능력이 없는 약한 사람이다. 이 때 그의 후원자로서 씨족 가운데 힘있고 지혜로운 인물이 나서서 대신 복수한다. “살인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피의 보복자가 바로 그런 살인자를 죽여야 하는 사람이다. 그는 살인자를 만나는 대로 죽인다.


미워하여 밀치거나 악의를 품고 무엇을 던져 남을 죽게 하였으면, 또는 적의를 품고 손으로 쳐서 남을 죽게 하였으면, 그 가해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는 살인자이다. 피의 보복자는 그 살인자를 만나는 대로 죽인다.” (민수 35,18-21).


  고엘은 빚에 몰려 곤경에 바진 사람도 도와준다. 그는 빚진 사람이 빚을 갚기 위해 토지를 팔아야 할 경우에 그것을 사주었다가 형편이 풀리면 다시 그 주인에게 되판다. 형편이 영 풀리지 않는 경우에도 앞에서 언급한 대로 희년이 오면 팔린 토지는 원주인 또는 적법한 상속자에게 돌아간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요 거류민일 따름이다. 너희가 소유한 땅에서는 어디서나 땅을 되사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네 형제가 가난해져 자기 소유지를 팔 경우, 그에게 가장 가까운 구원자가 나서서 그 판 것을 되사야 한다. 구원자가 없는 사람이라도, 스스로 힘이 닿아 되사기에 충분한 방도가 생기면, 자기가 판 뒤에 지난 햇수를 헤아려 나머지 값을 산 사람에게 치르고 그 소유지를 되찾는다. 그러나 되찾을 능력이 생기지 않으면, 그가 판 것은 희년이 될 때까지 그것을 산 사람의 손에 남아 있게 된다. 그러다 희년에는 그 소유자가 풀려, 그는 그것을 되찾게 된다.”(레위 25,23-28) 그리하여 희년에 되돌려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땅을 잃어버린 자들이 씨족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


  고엘은 피보호자가 종으로 팔려간 경우에도 개입하여 몸값을 비불하고 그를 자유롭게 하였다. “네 곁에 사는 이방인이나 거류민이 넉넉해졌는데, 그 옆에 사는 너의 형제가 가난해져, 네곁에 사는 이방인이나 거류민, 또는 이방인 씨족의 후손에게 자신을 팔 경우, 팔린 다음에라도 그는 자신을 되살 권리를 지닌다. 그의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그를 되살 수도 있고, 그 시족의 다른 살붙이가 그를 되살 수도 있다.”(레위 25,47-49)


  이렇듯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는 부정적인 시가에서 보면 피의 보수를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거친 고대의 폭력사회에서 씨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성서 저자들은 하느님을 고엘로 곧잘 묘사한다. 창세 4장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처음에 형의 손에 억울하게 맞아 죽은 아벨의 고엘이 되시지만, 카인이 처량하게 울부짖자 카인의 고엘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ꡐ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나리라. 네가 땅을 부치어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으리라,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리라.ꡑ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ꡐ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ꡑ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ꡐ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으리라ꡑ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징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는 못하도록 하셨다.”(창세 4,10-15)


  시편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공경하는 이들을 압제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속하시는 고엘이심을 노래한다. “주님,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시여 당신 앞에 드리는 제 입의 말씀과 제 마음의 생각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시편 19,15: 참조: 78,35; 103,4; 106,10; 107,2). 욥은 참아 내기 힘든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이 아직 자신의 고엘이심을 고백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계심을, 구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욥 19,25)


구약성서에서 고엘-하느님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15번) 책은 제 2이사야서(40-55장)이다.


바빌로니아 우배라는 위기상황에서 속량자 하느님이 간절히 필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고엘의 개념은 마침내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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